"징벌적 과세"·"250만호 공급"…부동산으로 시작된 대선전 [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1-11-07 09:00

여야가 내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확정함에 따라 본격 레이스에 들어갔다.

이번 대선 만큼 ‘안갯속’에서 치러지는 사례를 찾기는 힘들다. 여야 유력 후보의 운명이 모두 검찰의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역대 대선에서 후보들이 이런 저런 구설수와 약점으로 상대의 거센 공격을 받은 적이 있지만, 유력 후보들이 한꺼번에 수사를 받는 속에서 선거를 치르는 경우는 없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둘러싼 이른바 ‘대장동 게이트’의 불똥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선 후보교체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대선 경쟁자였던 이낙연 전 대표는 승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의 지지자 중에선 후보 교체론이 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을 여전히 갖고 있다.

국민의힘도 대선 후보로 선출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사주 의혹과 처가 의혹이 걸림돌이다. 여당은 윤 후보의 이런 의혹들의 고리를 집요하게 파고들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어떤 돌발적 상황이 발생할 지 모른다. 이럴 경우 윤 후보와 경선에서 겨뤘던 다른 후보들이 얼마나 ‘원팀’으로 윤 후보를 받쳐줄지 알 수 없다. 여야 모두 ‘지뢰밭 대선’을 치르게 된 셈이다.

여야 모두 경선 과정에서 네거티브전에 치중하면서 유력 후보 대부분이 호감도보다 비호감도가 높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뽑을 후보가 잘 안 보이는 역대 최악의 선거를 치를 판”, “차선은커녕 차악의 후보를 뽑아야 할 판”이라는 비아냥거림마저 나왔다.

경선에서 정책과 비전 경쟁이 사라지다시피 하는 바람에 유권자들은 누가 대한민국을 이끌 좋은 후보인지 판단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본선에서도 여야 후보들이 유권자의 바람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면 ‘스윙보터’, 즉 중도층의 대거 이탈은 물론 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불러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여당 내에서도 “정권 교체”…문 대통령과 거리 두기?이번 대선에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정권 교체냐’, ‘정권 재창출이냐’다. 보통 야당은 정권 교체, 여당은 정권 재창출을 외친다. 주목되는 것은 민주당 내부에서 정권 재창출이라는 말을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후보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집권 시 새 정부의 이름은 ‘이재명 정부’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다음 발언이 주목된다.

“기본적으로는 문재인 정부를 승계해야 한다고 본다. 거대한 정치 세력인 민주당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은 본질적으로 같다. 그러나 줄기마다 특색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전 정부와 완전히 똑같으면 영구 집권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 측면에서는 정권 교체인지는 모르겠지만 권력 교체라는 점은 분명하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정권 교체론을 언급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여든, 야든 정권은 교체되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새로운 정권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 선거는 과거에 대한 평가와 심판의 성격도 있지만 보다 큰 것은 미래에 대한 선택”이라며 “문재인 정부를 재창출하는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기본 노선과 장점은 계승해 나아가되 부족한 부분은 보완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 교체 여론이 높게 나오자 문 대통령과 선을 그으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권 말 여당이 선제적으로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선 것은 역대 정권의 공통점이었다. 집권 초·중반까지는 대통령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정국의 주도권을 청와대가 쥘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권 말 대통령의 힘이 빠지면 당이 주도권을 갖는 게 보통이었다. 미래 권력은 선거 승리에 걸림돌이 된다면 언제든지 현 권력과 과감하게 손절하는 길을 택했다. 이 후보와 송 대표의 ‘정권 교체’ 발언이 이런 차원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문재인 정부와 일정 정도 차별화하려는 전략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번 대선전에서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야권 단일화 여부다. 그 대상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다. 안 대표는 지난 1일 대선 출마 자리에서 국민의힘 주자들과의 단일화·연대 가능성을 묻자 “저는 당선을 위해서 나왔다. 또 정권 교체를 하겠다고 이미 말씀드렸다”며 직접 답변을 삼갔다. 하지만 여지를 남겼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국민의힘도 안 대표와의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대선전이 본격화하면 접촉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다만 단일화 방식, 즉 권력 분점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안철수 총리론이 나온다.


‘새로운 물결(가칭)’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고 신당 창당에 시동을 건 김 전 부총리는 최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더불어는 없고 국민의힘에 국민은 없다”며 거대 양당을 싸잡아 비판한 뒤 “기존 정당과 정말 다르게, 거꾸로 해보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출마 선언을 하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례를 언급하며 “기존 정치권에 숟가락을 얹지 않고 완주하겠다”고 했다. 또 “중앙집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 주민 참여 없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거대 양당 정치로는 묵은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제3지대에서 새로운 정치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독자적으로 가겠다는 뜻이다.

캠프 관계자는 “김 전 부총리는 양당 진영이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고 미래 발전을 위한 얘기가 일절 없으며 진짜 진보·보수의 가치가 사라진 상태라고 보고 있다. 양쪽 모두 제대로 된 가치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함께할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못 박았다.

안 대표와 김 전 부총리의 단일화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는 “김동연 후보는 이번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셨다”며 “문 정권의 공과에 대해 먼저 밝히는 것이 순서”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전 부총리는 “기존 양당을 포함해 안 대표 본인도 시대 교체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개발 이익 완전 환수·국토보유세 등 급진 대책 내놔여야 대선 주자 간 정책은 뚜렷하게 차별화된다. 부동산 정책이 특히 그렇다. 이 후보는 역대 그 어느 대선 후보보다 이념적으로 왼쪽으로 가 있다는 것이 정치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후보는 지난 2일 선거대책위 출범식 연설에서 “높은 집값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국민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자신의 부동산 대책의 얼개를 밝혔다. 개발 이익의 완전 국가환수제, 건설원가·분양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등을 제시했다. 앞서 부동산 투기 문제를 조사할 부동산감독원 신설 방침도 내놓은 바 있다. 모두 국가 통제식 정책이다.

보유세 대폭 인상과 국토보유세 부과, 주택관리매입공사 설치 방안도 밝힌 바 있다. 주택관리매입공사는 집값이 내려가면 국가가 집을 사들여 공공 임대 주택으로 공급하고 폭등하면 매입 주택을 시장에 내놓아 집값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공급은 주로 공공 주도 개발 방식을 내놓았다. 정부가 개입해 집값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으로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후보는 국토보유세와 관련해 “다주택 보유자에겐 심하게 손실이 날 수 있게 세 부담을 강화할 것”이라며 “투기 부동산에는 세금 폭탄을 넘어 징벌적 과세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윤 후보는 지난 5일 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폭등은 재산 약탈”이라고 비판했다. 대선 승리 땐 부동산 정책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윤 후보는 대선 경선 과정에서 부동산 대책을 ‘1호 공약’으로 발표하며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놨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국민이 집을 사기도, 보유하기도, 팔기도, 전셋집을 얻기도 어렵게 만들었다”며 “주택 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모든 국민의 주거 수준 향상 실현’에 두고 수요에 부응하는 다양한 주택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임기 5년간 수도권 130만 가구 등 전국에 총 250만 가구 이상 새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임기 내 청년과 신혼부부, 무주택 가구 등에 건설 원가로 총 50만 가구를 공급하고, 이 가운데 10만 가구는 대도시 역세권의 용적률 규제를 대폭 풀어줘(300%에서 500%) 늘어난 용적률의 50%를 공공 기부채납 받아 공급하겠다고 했다. 또 다른 10만 가구는 국공유지를 개발해 원가로 분양한다고 제시했다.

30만 가구의 ‘청년 원가 주택’은 무주택 청년 가구가 건설 원가의 20%로 주택을 분양받은 뒤 나머지 80%는 30년 동안 낮은 이자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게 했다. 5년 이상 거주하면 국가에 팔 수 있게도 했다. 매각할 때는 애초 구매 원가와 차익의 70%를 더한 금액을 가져갈 수 있게 해 일정 정도의 수익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20·30대 무주택 청년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하고 재산이 일정 수준 이하이면서 자녀가 여럿인 40·50대 무주택자에게로 범위를 넓혀 가기로 했다.

신혼부부·청년층 등에 대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80%로 상향, 저리 융자 등 금융 지원도 약속했다. 양도소득세 세율 인하와 대폭 오른 공시 가격 속도 조정을 통한 보유세 급등 차단, 장기 보유 고령층 1가구 1주택자의 재산세 부담 경감 대책도 내놓았다. 1가구 1주택자 세율 인하를 비롯한 종합부동산세 과세 체계도 뜯어고치겠다고 했다. 임대차 3법에 대해서는 임대 기간을 종전 2년으로 돌리고 전셋값을 올리지 않는 이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제시했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