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요소수 공급 대란이 심화되면서 자동차, 정유화학, 철강, 해운 등 국내 전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앞으로 한 달 내 전국의 모든 디젤 화물차가 멈추는 사상 최악의 물류대란이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요소수 재고가 한 달치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요소를 수입할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요소수 파동이 산업용까지 확산되면 물류대란을 넘어 국내 주요 공장이 멈출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고 1주일치 남은 물류업계
4일 물류업계에 따르면 LX판토스 등 국내 대형 물류업체들이 보유한 요소수 재고는 1주일치에 불과하다. 물류업체 관계자는 “이달 중순부터는 요소수 재고가 완전히 소진된다”며 “지금으로선 재고를 확보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어 손놓고 있다”고 털어놨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은 이들 대형 물류업체에 국내 화물운송을 의존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코리아세일페스타 등 연말 소비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물류대란이 벌어질 수 있어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정유화학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국내 ‘정유 빅4’ 업체가 보유한 요소수 재고량은 한 달치에 불과하다. 정유사들이 전국 각지 주유소로 기름을 운송하는 2000여 대의 디젤 트럭(탱크로리)이 운행을 멈출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일선 주유소에서 기름 공급이 불가능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철강업계도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철강제품의 국내 유통은 대형 화물차들이 맡고 있는데, 요소수 파동으로 트럭이 멈추면 제품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철강업체는 물류대란에 대비해 제품을 미리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계는 선박 부족에 따른 화물대란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국내 컨테이너 운송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요소수 사태가 한 달 이상 장기화되면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물류차량이 영향을 받으며 수출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소수 생산업체도 재고 바닥요소수는 2016년 이후 제작·수입된 디젤 차량에 의무적으로 장착되는 배출가스 저감장치(SCR)에 들어가는 필수 품목이다. 요소수 없이 주행하면 미세먼지 물질인 질소산화물이 노출된다. 이 때문에 요소수가 부족하면 디젤 차량의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국내 200만 대 화물차가 휘발유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디젤을 사용한다.
산업계는 요소수를 생산하는 롯데정밀화학, 휴켐스, KG케미칼 등만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업체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국내 요소수 시장에서 절반가량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롯데정밀화학의 요소 재고는 이달 말이면 소진된다. 요소수는 석탄이나 천연가스 등에서 뽑아낸 요소를 국내로 들여와 초순수(증류수)를 섞어 만든다. 요소 전체 수입 물량의 70%를 중국에서 수입한다. 중국이 요소 수출 검사 의무화 조치를 내리면서 국내 제조사들은 원재료인 요소를 구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업체와 수입 계약을 맺었지만 중국 정부의 수출금지 조치에 막혀 있다”며 “정부가 나서서 풀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제조업 현장도 초비상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물류대란을 막기 위해 철강, 화력발전, 시멘트업계 등 산업용 요소수 수요를 차량용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환경부도 산업용 요소수를 차량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술 검토를 하고 있다. 철강·시멘트 등의 공장에서도 질소산화물을 제거하기 위해 요소수를 활용하고 있다. 제철소 내 발전소나 보일러에도 질소산화물을 제거하기 위해 요소수가 들어간다.
산업계는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이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장은 차량용 요소수에 국한해 문제가 발생했지만 향후 산업용 요소수까지 부족해지면 사태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소수 재고가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차량용으로 전환할 경우 공장의 배출가스 규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산업계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한 발전업체 관계자는 “산업용 요소수 재고가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다”며 “차량용으로 전환해도 당장은 영향이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장기적인 대안으로 국내에 요소 생산시설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관련 업계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중국과의 가격 경쟁력이 낮은 상황에서 향후 요소 가격이 떨어지면 요소 생산시설을 구축한 기업만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경민/남정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