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붙여진 수다한 별칭 중에는 ‘독서 강국’이 있다. 예전만 못하다지만 지금도 여전히 통근 시간에 지하철에선 책장을 넘기는 직장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언제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책을 읽는 습관을 몸에 익힌 것일까.
《독서와 일본인》은 헤이안 시대(794~1185년)부터 현대까지 일본의 독서 문화사를 짚은 책이다. 대다수 한국인에겐 낯선 일본 고전 문헌과 역사 속 에피소드가 수시로 등장한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 독서 문화가 뿌리내리고 확산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데는 조금도 장애가 되지 않을 정도로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일본인의 독서는 《겐지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헤이안 시대의 수필에서 ‘겐지 이야기’를 소유하게 된 소녀가 “낮에는 온종일, 밤에는 자기 전까지 등불을 밝혀 책을 탐독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독서는 오늘날과 크게 달랐다. 여러 사람이 함께 책을 소리 내 읽는 ‘음독(音讀)’이 기본이었다. 혼자 묵묵히 책을 읽는 ‘묵독(默讀)’의 등장은 근대의 막이 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일본인의 독서 습관은 가나 문자 보급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지식인의 한자 독해력은 쇠퇴했지만, 독서층은 귀족과 학승에서 궁녀, 상·중층 무사, 촌락의 지도자 격 농민까지 확대됐다.
예수회 선교사와 임진왜란 직후 조선이라는 두 갈래 경로로 활판 인쇄술이 도입된 것은 독서 시장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에도시대(1603~1867년)의 엽색담을 담은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의 인기는 책의 대량생산과 유통체제의 구축으로 이어졌다.
독서의 대중화는 메이지 유신 이후 꽃을 피웠다.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1876년 쓴 《학문의 권장》은 340만 부가 팔렸다. 20세기엔 ‘독서의 황금시대’가 열렸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백만잡지’가 탄생했고, 장편소설 세 권이 담긴 박스를 1엔에 살 수 있도록 한 ‘엔본(円本)’이 인기를 끌었다. 염가 소책자인 ‘이와나미 문고’가 1927년 선보였고, 전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도 이때쯤 등장했다.
20세기 후반 절정에 달했던 독서 시장은 이후 급속한 쇠락을 맞이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게 됐고, ‘독서인구의 고령화’ ‘출판불황의 만성화’가 이어졌다.
이웃 나라의 독서 문화가 걸어온 길에 관한 책이지만 마치 한국 사회의 출판문화사를 접하는 양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책은 인류 공통의 언어일 뿐 아니라 독서의 쇠퇴가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