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으로 시리즈A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스타트업 스케일업 스토리]

입력 2021-11-04 10:06
수정 2021-12-01 09:50
[한경잡앤조이=정성현 라이너 COS] 나는 라이너 팀의 COS다. 풀네임은 Chief of Staff. 우리말로 직역하면 수석비서관이다. 국내 IT 스타트업에서는 생소한 직함이지만 사실 이 포지션은 미국의 테크 스타트업에는 예전부터 있었던 직무다. 최근 제프 베조스의 퇴임 이후 아마존 CEO가 된 앤디 제시가 아마존 베조스의 COS였다. COS가 하는 일은 대표가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로, 포지션의 역할과 책임이 정형화된 것은 아니다. 이는 기대되는 역량 및 업무가 함께 일할 CEO마다 다르다는 말이기도 하다.

라이너에서는 '노력하면 성과가 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을 리더의 역할로 생각한다. 이 개념은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라는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 리더는 쓸데없는 작업을 철저히 없애고, 팀원들이 한 방향으로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노력하면 성과가 나는 구조'를 위해 무인양품이 사용했던 도구는 2천 페이지에 달하는 매뉴얼이었다. 매뉴얼은 ‘어떻게 행동하는가’와 ‘무엇을 실현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자 회사 업무의 표준을 잡아주는 구조였다.

현재 팀에서의 내 역할은 노력하면 성과가 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을 돕는 것이다. 팀의 성장에 따라 일하는 방식과 구조를 고민하고 팀이 잘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텍스트 브이로그>를 통해 라이너 팀이 그동안 어떻게 일해왔는지, 어떻게 성장하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현재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할 생각이다.



하나의 미션팀을 위한 3가지 핵심
2020년 8월, 라이너는 단 7명만으로 5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입사했던 때를 돌이켜보면 이를 가능하게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적은 수의 팀원들이 각자의 기능을 전담하며, 하나의 팀으로 달릴 수 있는 구조 덕분이었다. 이 방법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며, 당시 라이너에 적합했던 방법이라는 것을 미리 밝힌다. 라이너가 일하는 방식의 원형에는 UGM(Unstoppable Growth Machine)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라이너의 CEO인 김진우 대표가 OKR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목표 관리 시스템이다.

“UGM이란, 올바른 목표에 대한 주기적인 선택과 선택된 목표에 대한 집중과 정렬을 통해 팀원이 노력하면 팀이 성과가 나도록 유지하며, 과정과 결과에 대한 학습을 통해 다음 주기에 팀이 전보다 개선된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구조”.

하나의 미션팀을 위해 필요한 3가지 핵심은 올바른 목표에 대한 주기적인 선택, 선택된 목표에 대한 집중과 정렬, 학습을 통한 다음 주기에 개선된 사고 3가지다. 3가지 핵심을 지키며 업무 주기를 반복한다면, 방향과 속도를 모두 챙기며 팀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UGM의 골자다. 당시 라이너 팀에서는 성장 방정식, 리추얼, 회고 라는 3가지 구조를 이용해 3가지 핵심을 챙겨왔다.

먼저, 올바른 목표를 선택하기 위해 라이너는 성장 방정식이라는 개념을 이용했다. 왜냐하면, 회사가 하는 일의 결과물은 지표로 나타나며, 어떤 지표가 중요한 것인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아마존에서도 비즈니스 성장을 위해 상품 종류(vertical) 확장 X 상품 종류 당 제품 재고 X 제품 페이지 당 트래픽 X 구매로의 전환 X 평균 구매 가치 X 반복 구매 행동 = 매출 성장이라는 공식을 정의하고 이용했다. 라이너도 회사의 성장을 이끄는 유저 행동 및 비즈니스의 핵심 지표를 정의한 성장 방정식이 있어 업무 주기마다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방정식의 항과 개선할 목표치를 팀 목표로 선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일을 해왔다.

선택된 목표에 대한 집중과 정렬을 위해서는 팀원들의 실제 업무가 팀 목표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돕는 구조로 2가지 리추얼이 있었다(주간 피드백 미팅, 데일리 스탠드업). 주간 피드백 미팅은 팀 리더와 함께 집중과 정렬되지 않은 업무가 과하게 잡히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미팅으로 주 1회 진행됐다. 팀원이 미리 신청하거나, 리더가 리소스 체크를 위해 팀원들에게 요청할 수도 있다. 집중되지 않은 업무가 과하게 잡혔다면, 업무가 팀 목표 방향성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우선순위 및 업무를 조정한다. 데일리 스탠드업은 모든 팀원이 각자 어제 한 일, 오늘 할 일, 장애물을 공유하는 미팅이다. 매일 점심시간 시작 전 약 10분간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를 통해 각자의 일 단위 업무가 팀의 정렬에서 과하게 벗어나지는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위 2가지 리추얼은 팀원들이 팀이 집중할 목표에 정렬된 채로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마지막으로, 학습을 통한 개선된 사고는 회고를 통해 챙겨왔다. 회고는 팀이 ‘어떻게’ 일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일하는 방법을 개선하는 방법이다. 팀 차원에서 일하는 방법에 대한 회고의 장을 여는 것은 개선에 대한 여지 및 의견을 내도 안전하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장점이 있다. 라이너의 회고는 이번 주기 진행 중의 감정, 좋았던 점 및 아쉬운 점에 대한 의견 카드를 모아 분류하고, 함께 이야기하며 개선 방안을 도출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회고 중에 나온 팀원들의 의견 및 개선 방안들은 다음 업무 주기에서의 계획과 행동에 지침이 됐다. 이처럼 회고를 통해 팀은 다음 주기에 개선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 형태는 살짝 달라졌지만 회고를 통한 일하는 방식의 발전은 아직 진행형이다.

팀에서 회사로
스타트업에는 "Unlearn what you have learned"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스타트업의 여정을 여러 개의 라운드를 클리어하는 게임과 같다고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스타트업은 라운드마다 해결할 문제가 있고 문제를 잘 해결하면 다음 라운드를 이어갈 수 있는 보상(자본, 팀원, 신뢰)을 받는다. 하지만 이번 라운드의 공략법은 다음 라운드에서 통하지 않는다. 같은 메시지를 더 잘 표현한 글로 링글 이승훈 대표님의 블로그에 ‘+20명 팀이 성공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그중 한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20명 이상이 되면 방향성이 전제되지 않은 개개인의 몰입, 노력이 오히려 조직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팀에서 회사로의 전환(Transition)을 준비해야 한다."

시리즈 A 투자 유치 이후 라이너의 게임 역시 규칙이 바뀌었기 때문에 하나의 미션팀으로는 부족했다. 더 많은 팀원과 함께 여러 개의 미션팀이 하나의 방향으로 달리는 구조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지킬 것은 지키고, 달라져야 할 것은 바꿔야만 했다. 라이너 팀에도 팀원이 늘어가면서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25명인 현재는 UGM의 3가지 핵심을 지키며 최대 6개의 미션팀이 달릴 수 있는 구조가 완성됐다. 이제는 30명이 되기 전에 100명의 팀원이 하나의 팀 이자 여러 개의 미션팀으로 일할 수 있는 회사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문제를 풀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사업과 함께 팀이 성장하면서 그동안 팀이 회사로 전환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극복해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려 한다.



정성현 씨는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라이너에서 커리어를 시작, 지금은 COS로서 라이너 팀원들과 '라이너 팀'이라는 제품을 함께 만들고 있다.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