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9단(28·사진)이 신진서 9단(21)을 누르고 삼성화재배에서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박정환은 3일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에서 온라인으로 열린 2021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 3번기 제3국에서 166수 만에 불계승했다. 1국을 내준 박정환은 2, 3국을 모두 가져오면서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우승 상금은 3억원이다.
박정환이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정환은 2011년 후지쓰배, 2015년 LG배, 2018년 몽백합배, 2019년 춘란배에 이어 개인 통산 다섯 번째 세계 메이저 기전 우승을 이 대회에서 품었다. 통산 우승 수는 32승이 됐다. 또 박정환은 2014년 김지석 9단 이후 7년 만에 삼성화재배 우승 트로피를 한국에 안겼다. 한국 선수들은 올해 26회째를 맞은 이 대회에서 총 13승을 거뒀다.
국내랭킹 2위 박정환은 1위 신진서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였다. 이 대회 전까지 상대 전적에서 21승26패로 뒤져 있었다. 단판 승부가 아니라 ‘번기 승부’에서도 최근 6연패를 당했다. 박정환은 “처음부터 힘들다고 생각했고 결승 1국까지 져 거의 반포기 상태였는데 운이 따른 것 같다”며 “결승 2, 3국 모두 내용이 어렵고 한 수라도 실수하면 바로 지는 바둑이었기 때문에 승리가 더 값지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박정환은 지난해 1월 신진서에게 ‘1인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남해 슈퍼매치’ 7번기에선 0-7이라는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한국 바둑의 세대교체는 그렇게 자연스레 이뤄지는 것처럼 보였다. 박정환은 “신진서 선수에게 전패하다시피 하면서 내 바둑의 문제점을 알게 됐다”며 “그때 그 7번기가 나를 성장시켰다”고 돌아봤다.
박정환은 좌절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패배를 곱씹으며 초심으로 돌아갔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앞서 이번 대회 결승에 먼저 오른 뒤에는 “신진서 9단을 응원하겠다”고 했다. 신진서가 결승에 오르자 “한국의 우승이 결정돼 기쁘다”며 후배와 선의의 경쟁을 다짐했다.
박정환의 부활로 한국 바둑의 패권 다툼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박정환은 다음달 열리는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8강전에서 중국의 커제 9단(24)과 대결을 앞두고 있다. 그는 “(이번 대회) 8강전 진출자를 보니 내 나이가 가장 많았다”며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 더 절박하게 임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오늘만 쉬고 내일부터 다시 공부하겠다”고 열의를 보였다.
자신의 세 번째 메이저 타이틀에 도전했던 국내랭킹 1위 신진서는 이 대회에서 2년 연속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는 지난해 결승에서 중국랭킹 1위 커제 9단과 맞붙었으나 마우스가 오작동하는 불운에 발목이 잡혀 패한 바 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