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동차업계의 최대 이슈는 차량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다. 이런 악재에도 불구하고 유독 테슬라는 최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테슬라 사례는 공급 사슬망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칩 공급 차질로 전 세계 완성차 생산 기업들이 고객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는 올해 초부터 불거진 이슈로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최근 인기 있는 신차를 사려면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대기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테슬라의 역대 분기 최대 실적’ 소식은 미스터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테슬라는 올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57% 늘어난 매출을 올리며 증권가 전망을 웃도는 성과를 달성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지난해 대비 다섯 배 이상 급증했다. 영업이익률은 25%가 넘어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경이로운 수치다.
도대체 ‘테슬라의 비결’은 무엇일까. 월가는 이 같은 실적 배경에 생산 비용이 저렴한 중국 공장의 생산 물량을 확대해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는 전략이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런 월가의 해석은 반도체 물량 부족을 테슬라가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설명하기에는 궁색하다. 더구나 테슬라는 일반 차량에 비해 더 많은 전자 장비를 사용하는 전기차다. 반도체 공급 문제에 더 큰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기업이다. 이 같은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단초를 일론 머스크가 이사회에 전달한 메시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엔지니어들의 창의적인 발상과 소프트웨어 기술로 반도체 공급 사슬 문제를 해결했다”고 전했다.
테슬라가 전기차 설계부터 소프트웨어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차량 구조는 크게 기계장치와 기계장치를 제어하는 전자장치로 나뉜다. 전자장치는 반도체 칩들과 구동 소프트웨어로 구성된다. 전통적인 완성차 업체의 차량은 기계장치 위주로 설계하며 전자장치는 이러한 기계장치를 지원하기 위한 역할을 맡는다.
이와 달리 테슬라는 기본 개념부터 전자장비 및 소프트웨어를 중심에 배치한 ‘소프트웨어 중심(Software-defined)’으로 설계하고 있다. 차량 사방에 기능별 부가 기능 형식으로 흩어진 전자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일괄 제어 및 통합 관리하는 개념이다. 즉 전자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기계장치의 종속이 아니라 상위 혹은 상호 보완 개념으로 설계했다. 머스크가 자사의 차량을 거대한 소프트웨어에 배터리와 모터, 바퀴를 단 것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러한 소프트웨어 중심 설계를 의미한다. 이 덕분에 테슬라 차량의 많은 부가 기능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형식으로 제공된다. 마치 스마트폰에서 필요한 앱을 내려받아 사용하는 개념과 유사하다.
이런 소프트웨어 설계 개념이 이번 차량 반도체 공급 문제 해결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테슬라는 특정 반도체 칩이 공급난에 시달리자, 다른 공급 가능한 반도체 칩을 대신 사용하고 대신 칩 구동 소프트웨어를 변경했다. 반도체 칩이란 하드웨어의 공급 문제를 소프트웨어 변경으로 유연하게 대체한 것이다. 이같이 소프트웨어 변경을 통한 유연한 대처는 다른 차량 업체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기술이다. 일반 차량 업체의 경우 차량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과 이를 연동하는 소프트웨어를 모두 외부 공급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칩 공급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쉽지 않다.
이번 테슬라 사례는 공급 사슬망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사례로 회자될 것이다. 과거 하드웨어에 종속돼 온 산업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개편되며, 고객 서비스 대응뿐 아니라 공급 사슬망도 유연하게 혁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다. 공급 사슬망 관리의 핵심은 시장의 미래를 잘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대응과 회복이 가능한 시스템과 조직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이제까지는 재고 관리와 공급 네트워크 다변화와 같은 운영의 과학화가 공급 사슬망 관리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제품의 기술적 혁신을 통해 공급 사슬망의 유연성을 증대하는 방향이 공급 사슬망 관리의 핵심이 될 것이다. 특히 가전제품의 경우 클라우드와 사물인터넷을 통해 연동되고 전자 장비화하는 상황에서 가전 업체들도 테슬라 사례를 벤치마킹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