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며 남북 산림협력을 임기 말 의제로 불쑥 꺼내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공식 천명한 데 이어 청와대와 통일부 등 관련 부처들도 앞다퉈 추진 방침을 밝히고 나섰다. 한반도 전체의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는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남북관계 개선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진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기후위기 대응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靑 “남북 산림협력, 굉장히 좋은 제안”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일 언론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남북 산림협력 제안에 대해 “다목적의 포석을 두고 굉장히 좋은 제안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수석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한 걸음이라도 진전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북·미 협상에도 도움이 되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 “북한 지역의 산림 훼손으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며 “남북 산림협력으로 한반도 북쪽까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고, 우리로서는 탄소배출 감축과 관련해 국내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기조연설에서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산림 회복에 적극 협력하겠다”며 “아울러 남북한 산림협력을 통해 한반도 전체의 온실가스를 감축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행사장에는 최일 주영국 북한대사가 자리해 문 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했다.
문 대통령을 수행한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현지 브리핑에서 “2030년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 40% 중에 해외 감축분이 약 5%”라면서 “이를 활용하는 사업을 다른 개도국에서도 하면서 북한 산림 복원을 왜 못하겠느냐”고 말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측과의 추가적 협의를 진행할 수 있게 되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다양한 협력방안 등도 협의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野 “정권 말 혈세 낭비…정책 실패 면피용”남북 산림협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협력 사업으로 꼽힌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북한의 산림 면적은 899만㏊로 전체 면적의 73% 수준이다. 황폐화한 산림은 2008년 기준 전체 삼림 면적의 약 32%인 284만㏊로 파악된다.
이 때문에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산림협력이 논의됐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에는 남북 환경협력과 관련해 ‘우선적으로 현재 진행 중인 산림 분야 협력의 실천적 성과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후속조치로 2019년 1월 산림청에 ‘남북산림협력추진단’을 설치하고 북한 산림복구를 위한 수종 종자와 묘목 생산·비축 등에 나섰다. 다만 북한이 지난해 대북전단 문제 등을 이유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산림협력도 중단됐다.
정부는 그러나 내년 예산안에도 남북 산림협력 예산 76억원을 편성해놓았다. 이에 야당은 해당 사업을 정권 말 불요불급, 혈세 낭비, 정책 실패 면피용 사업으로 규정했다.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은 “출하될 시점도 알 수 없는 대북 묘목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며 “국내 멸종 위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등 침엽수종을 북한 산림 복구를 위해 기르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대북 지원 묘목으로 길러지고 있는 327만 그루 중 7만6800그루가 멸종위기 침엽수종이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남한이 2030년 탄소 배출량을 4억3660만t으로 정했는데 산림에서 흡수하는 탄소량은 연간 2000만t 수준에 불과하다”며 “북한에 나무를 웬만큼 대규모로 심지 않고서는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융합과학대학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북한에 나무를 심는다고 해도 땔감으로 베면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찬/임도원/정의진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