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거 앞두고 '선심 예산' 끼워넣기, 누가 막을 건가

입력 2021-11-01 17:14
수정 2021-11-02 06:48
국회가 어제 공청회를 시작으로 605조원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 들어갔다. 올해보다 8.3% 늘어 처음으로 600조원을 돌파해 ‘초슈퍼’ 소리를 듣는 예산안이다. 적자국채 77조6000억원이 포함돼 나랏빚은 1000조원을 넘어가게 된다. 그런 만큼 여야는 철저한 검증을 통해 낭비와 비효율을 가려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여당은 오히려 정부안에 없는 이재명 후보의 대선공약 재원을 추가로 넣으려고 한다. 지역사랑 상품권 발행, 소상공인 손실보상액 증액 예산 등이다. 재난지원금 추가 지원 예산도 일부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이 후보는 “국민 여론을 따르는 게 관료가 할 일”이라며 기획재정부를 대놓고 압박했고, 여당은 “곳간 지키는 사람을 설득할 것”이라고 맞장구쳤다. 국민 혈세를 특정 대선후보 공약 지원에 써도 된다는 면허라도 받은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본예산 자체도 이미 선심성 사업이 수두룩하다. 보건·복지·고용분야 예산은 217조원으로 사상 최대다. 청년대책에는 전년보다 16% 급증한 23조원을 쏟아붓는다.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 여론이 적지 않은 20~30대 표심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청년대책이 선거용으로 급조됐음은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자료에서 드러난다. 예정처는 예산 검증에 소홀했다며 재검토가 필요한 사업으로 청년 월세 특별지원, 청년통장 정책을 꼽았다. 현 정부 초기 대폭 줄었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역대 최대인 28조원이나 책정된 것은 지방선거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여야 의원들의 민원이 상당수 반영됐다고 한다.

예산안이 문제투성이인데도 국회가 정밀 심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심사기한이 짧은 것도 문제지만, 야당도 표를 의식해 ‘주고받기’ 끝에 퍼주기에 동승한 게 그간의 예다. 여야 의원들은 벌써부터 현수막, 문자메시지 등으로 지역구 예산 따내기 ‘공적’을 자랑하기 바쁘다. 예산 심사에 들어가면 ‘카톡 민원 예산’은 더 기승을 부릴 게 뻔하다. 여야가 한통속으로 그러면 정부도 결국 꼬리를 내릴 것이다. 나라살림이 ‘고양이 앞의 생선’ 꼴이 돼 버렸다. 감시자가 도둑질하는 셈이니 도대체 누가 부실 예산을 걸러내고 재정 낭비를 막을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국회의 기본 책무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재정 감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이 콩밭(선거판)에 가 있어도 국민이 위임한 책임은 다해야 한다. 선거만을 위해 ‘나눠먹기 잔치’로 재정을 거덜내는 데 앞장선다면 대(對)국민 배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