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디지털 시대 역행하는 일본 경제

입력 2021-11-01 17:29
수정 2021-11-01 23:57
소득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의 하나가 임금이다. 작년 일본의 평균임금은 4362만원인데, 한국은 4753만원으로 한국이 일본보다 391만원이나 높다.(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자료) 경제가 건전하게 잘 돌아가려면 노동 유연성이 작동하고, 소비·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일본은 이와 반대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직(轉職)률, 노인돌봄 서비스, 저축·내부유보를 들어 일본 경제의 과제를 짚어보자.

우선 낮은 노동 유연성이다. 일본은 ‘한 곳에서 목숨을 걸고 지낸다’는 의미의 ‘일소현명(一所懸命)’을 중시해온 역사적 배경이 있다. 직장도 한번 정하면 전직하지 않고 오랫동안 일하는 특징을 지닌다. 실제로 같은 회사에서 10년 이상 일하는 사람의 비율이 일본은 45.8%로 한국(21.5%)보다 2.1배나 높다.(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 조사) 낮은 전직률은 기업 고유의 인적 자본이 쌓인다고 하는 장점이 있지만, 노동 이동의 경직성이 심해 적재적소 인재 배치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노인돌봄(일본에선 개호(介護)라 함) 서비스 시장 왜곡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개호 업무는 저임금과 함께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다’는 3K(3D의 일본어 표현 발음)라는 이미지가 있어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도심일수록 구인난이 심해 도쿄 시나가와(品川)구의 돌봄 도우미 구인배율은 48배에 이른다. 외국인 고용, 로봇 도입 등의 대책도 강구되지만 개방성이 약하고 인적 서비스를 선호하는 일본의 속성상 발 빠른 개선은 요원하다.

마지막으로, 활발한 소비나 투자를 통한 경제 활성화보다는 많은 자금이 개인 저축 및 기업 내부유보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일본 총무성 가계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2인 이상 현역세대의 평균 저축액은 1억4177만원에 이른다. 금융자산 보유 형태를 국가별로 보면 미국은 예금자산이 13%, 주식·투자신탁자산은 51%를 차지하지만, 일본은 저축의 약 60%가 예금이다. 안전자산 선호가 강하고 장래 불안 대비용 예비적 저축 동기가 높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도 위험을 감수한 과감한 투자보다 내부유보로 쌓아두고 있다. 그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90% 수준인 484조4000억엔에 달한다.

일본은 디지털화에 소극적인 아날로그형 기업 경영자가 많고 디지털 인재도 부족하다. 디지털화 낙후로 인해 노동생산성이 낮음에도 생산성 향상을 통한 임금 상승보다는 고용 유지를 중시해왔다. 작년 경제활동인구(15~65세) 고용률(취업률)은 일본이 77.3%로 한국(65.3%)에 비해 12%포인트나 높다. 여기에는 기업을 운영해 높은 보수를 추구하기보다 기존 조직에 소속돼 더불어 생활을 영위하려는 일본인의 성향이 반영돼 있다.

일본이 직면한 과제는 폐쇄성 및 아날로그적 사고의 극복이다. 일본 경제가 개방형 디지털화에 뒤지기 쉬운 구조라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금방 거꾸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디지털을 받쳐주는 소재·부품·기계장비나 지역 고유의 아날로그 전통 문화가 한국에 비해 잘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코로나19가 수그러들면 많은 관광객이 각 지역의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한 일본으로 몰려올 것임을 시사한다. 일본에 비해 지역문화·지식·전통의 축적이 적은 우리의 과제는 디지털 기반 강화 및 그 기반에 담을 아날로그 콘텐츠의 확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