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 동결하는 2주새 2300억 증발…'브이글로벌' 수사 논란

입력 2021-11-01 14:44
수정 2021-11-01 14:59

역대 최대 암호화폐 사기 범죄로 꼽히는 ‘브이글로벌 사건’에 대해 경찰이 당초 2400억원의 회삿돈을 몰수보전했다고 했지만, 계좌 동결 직전에 약 2300억원이 빠져나간 것으로 뒤늦게 파악됐다. 경찰은 “몰수보전 집행은 검찰의 영역”이라며 “현행법상 계좌 변동 사항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1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계좌 확인 뒤 검찰의 보전 명령 집행까지는 시일이 걸리고, 현행법상 경찰이 해당 계좌를 즉시 지급정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몰수보전 신청 뒤 법원의 인용 결정이 나기까지 예금잔액 변동은 부득이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브이글로벌 사건을 수사하는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4월 15일 회사 계좌에 남은 2400억원에 대해 기소 전 몰수보전을 신청했다. 범죄 피의자가 확정 판결을 받기 전 범죄 수익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다. 경찰이 신청하면 검찰이 청구해 법원이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같은달 29일 법원에서 인용 결정을 받은 뒤 브이글로벌 계좌에 실제 남은 돈은 120억원대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 청구와 법원 인용 과정을 거치는 2주 동안 2300억원가량이 출금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 6월 브이글로벌 계좌를 추가로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남은 잔액을 뒤늦게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행 제도에서는 몰수보전 신청 뒤 계좌에 얼마가 남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원이 인용 여부를 결정한 뒤에는 경찰이 아니라 검찰이 몰수·추징보전 명령을 집행한다는 이유에서다.

국수본 관계자는 “경찰은 계좌 잔액 변동내역에 대해서도 별도 계좌영장 없이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법원 인용 이후 실제 몰수·추징보전 금액 등은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총 4회에 걸쳐 피의자 재산 등 194억 상당에 대해 법원의 추징보전 인용 결정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194억원 가운데에서도 실제 확보한 금액은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빠져나간 2300억원의 자금 흐름에 대해서는 “구조상 자금 모집책이 회원을 모집하면 돈을 지급한는 형태여서 상위 모집책에서 하위로 자금이 흘러간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며 “범죄수익은 수사가 진행 중이니 끝까지 몰수·추징 보전 조치를 하겠다"고 설명했다.

국수본은 관련 법과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국수본 관계자는 "부동산과 달리 변동성이 큰 예금·채권 등의 경우 초기 수사 단계의 신속한 자금 동결을 위해 지급정지 규정이 신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같은 방안을 포함한 다중사기범죄의 피해 방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브이글로벌 사건은 역대 최대 규모 암호화폐 사기 범죄로 주목받았다. 이들은 “600만원을 넣고 계좌를 개설하면 단기간에 1800만원으로 되돌려준다”며 ‘다단계 피라미드식’으로 회원을 끌어모았다. 피해자는 5만 명대, 피해 규모는 2조2000억원대로 추산된다. 경찰은 지금까지 77명을 수사해 이중 14명을 구속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