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장동에서 잃어버린 것들

입력 2021-10-31 17:11
수정 2021-11-01 00:20
“그게 가능해? 부작용이 클 텐데.”

2000년 공공택지 개발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게 된 도시개발법 개정안을 본 전문가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당시 입법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비도시 지역을 도시로 만들거나 쇠락해 가는 도시 기능을 되살리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법 개정 때부터 민간이 과도한 수익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비슷한 취지의 공공주택특별법과 비교해 보면 금방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에는 공공과 민간이 공동으로 택지개발을 하는 경우 민간 사업자의 이윤율을 총사업비의 6%로 제한하고 있다(소위 ‘6%룰’). 또한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른 택지개발을 위해서는 전체 주택의 50% 이상을 임대주택 등 공공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소위 ‘50%룰’). 이 두 가지 규정 때문에 공공주택특별법에 의해 건설된 1·2기 신도시에서는 적어도 특정 시행자에 대한 특혜 시비는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대장동 사업에서는 묘하게도, 어찌된 이유인지 이 두 가지 규정이 몽땅 빠진 채로 통과된 도시개발법이 적용됐다. 민간사업자의 이윤율을 규제하는 조항도,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조항도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허가권자와 결탁하면 언제든지 국민의 공분을 살 수 있는 특혜가 특정 사업자에게 주어질 수 있는 구조다. 사업자들은 입법의 흠결을 파고들었고, 결국 원주민들과 신규 입주민들의 피해를 바탕으로 일반인은 상상치 못할 천문학적인 수익을 창출했다.

이번 대장동 사태를 보면서 중요한 국가 존립의 기반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먼저 국가(특히 사정기관)의 역할과 기능이 무너졌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국가기관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중 감사원,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은 부패를 유발할 수 있는 입법이 통과된 경우 선제적으로 부정의 소지를 없앨 수 있도록 행정기관에 사전 경고하고 적극적으로 기획 감찰해야 한다.

대장동 사태는 부작용을 예상치 못한 입법부, 법의 흠결을 파고든 사업자들에게 휘둘렸거나 적극 가담했던 지방자치단체, 이런 상황을 제대로 감찰하지 못한 사정기관들의 무능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결과다. ‘정부의 자리’가 어디인지 되새겨봐야 한다.

다음으로 정부 내의 권력통제 기능이 무너지고 있어도 외부적으로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할 언론과 시민단체의 책임도 크다. 정부의 역할을 감시·감독하는 모든 매체들, 수많은 건설·환경 관련 시민단체들이 제대로 눈을 부릅뜨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예의주시했다면 이렇게 국민적 공분을 살 거대한 부패의 고리를 진작에 끊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언론과 시민단체의 제자리 찾기와 분발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를 통해 가장 크게 잃어버린 것은 ‘국민의 신뢰’다. 수도권 인구의 절반 정도는 여전히 내 집이 없다고 한다. 나머지 절반의 국민 중 대다수도 “안방이나 마루쯤은 은행 것”이라면서 헛헛한 웃음을 지을 정도로 높은 집값과 대출이자에 허덕인다. 여기에 교육비와 세금은 점점 늘어나는데 설상가상으로 덮친 코로나로 국민의 30% 정도에 해당하는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경제구조상 퇴직 후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숫자를 제한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그래도 국민들은 믿었다. 국가는,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그런데 이번 대장동 사태로 이런 신뢰는 정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춘향전 마지막 장면에 이몽룡은 변학도의 학정과 가렴주구에 대해 “歌聲高處怨聲高(가성고처원성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더라)”라고 질타했다. 일찍이 공자도 ‘신뢰’가 국가존립의 마지막 보루라고 했다. 이 일의 시작이 어찌됐든 마지막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종결돼야 한다. 그게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