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술'만 난무하는 대선판 [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1-10-31 10:07
수정 2021-10-31 10:08

내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후보들 간의 경쟁은 그야말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다. ‘대장동 게이트’를 두고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 이재명 전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간 이어진 ‘전투’는 ‘명낙대전’으로 불릴 정도로 치열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고발 사주’, 처와 처가 의혹과 관련해 여당뿐만 아니라 같은 당 후보들에게도 맹공격받고 있다.

대선판은 ‘싸움의 기술’들만 난무하면서 포연으로 가득하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정책과 비전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누가 내 삶을 더 좋게 만들어 줄까’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접는 게 낫다는 자조들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주요 대선 주자들에 대한 민심의 평가는 냉혹하다. 호감도보다 비호감도가 훨씬 높다. 과거 대선에서도 비호감도가 높은 후보들이 많았지만, 이번처럼 주요 후보 모두 비호감도가 훨씬 높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주요 대선 주자, 비호감도가 호감도의 2배 달해


한국갤럽이 지난 10월 19∼21일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한 결과 이 전 지사에 대한 호감도는 32%인 반면 비호감도는 60%에 달했다. 윤 전 총장은 호감도 28%, 비호감도 62%,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호감도 31%, 비호감도 59%를 각각 나타냈다. 다른 여론 조사에서도 비호감도가 호감도보다 훨씬 높았다.

‘싸움의 기술’은 대장동 게이트와 고발 사주 문제로 엮인 이 전 지사와 윤 전 총장이 두드러진다. 두 사람의 ‘싸움의 기술’은 대선 등판 전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이 전 지사는 ‘반항’, 윤 전 총장은 ‘항명’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었다. 이 전 지사는 ‘사이다’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슈 파이팅으로 이름을 높였다.

윤 전 총장이 유력 대선 주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두둑한 배짱과 뚝심에 바탕을 둔 싸움의 기술에 있다. 검찰총장 시절 ‘사람에 충성 않는다’는 특유의 지론으로 조국·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정면으로 맞서 사실상 ‘KO’승을 거뒀다. 대통령과 ‘맞짱’ 뜨는 것도 피하지 않았다. 보통 맷집이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이런 맷집과 뚝심이 그를 대선 주자로 우뚝 서게 만든 원동력이다.

정치 장외에서 출발해 ‘블랙 스완’의 꿈을 이루려는 두 사람의 ‘싸움의 기술’은 점점 궤도에서 엇나가는 모양새다. 국정 감사에서 확인됐듯이 ‘대장동 게이트’에 대한 이 전 지사의 발언은 현란하다. 일찌감치 게이트 몸통을 국민의힘에 치환한 것은 교묘하다. 화천대유에 근무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아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은 것을 두고 그런 프레임을 작동하는 것이다. 대장동 개발 계획이 그가 성남시장 재직 시 이뤄졌고 10여 차례 결재했음에도 ‘돈 받은 자가 범인’이라는 논리를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주입시키며 ‘몸통’을 국민의힘에 떠넘긴 것이다. ‘그분’에 대해 “부정부패의 주범은 돈을 받은 사람”이라며 역시 국민의힘 탓으로 돌렸다.

이 전 지사는 국정감사에서 대장동 개발에 대해 그의 책임을 추궁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말을 끊고 파고들고 둘러치기하는 기술이 탁월했다. 선과 악의 이분법 구도로 자신은 기득권에 희생당했다는 논리를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국민의힘 의원이 ‘측근 비리가 밝혀지면 사퇴하겠느냐’고 하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측근이 100% 확실한 그분의 문제에 국민의힘이 사퇴할 것인지 먼저 답하라”며 돌려치기로 피해 나갔다.

초과 이익 환수 조항이 빠지면서 지분이 7%에 불과한 민간 업자가 배당금을 4040억원이나 챙긴 부분에 대해선 “행정은 투기, 벤처가 아니고 안정적으로 해야 한다”며 책임을 피해 나갔다. 의혹의 핵심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며 “공무원 일탈”이라고 한 것에 대해선 ‘꼬리 자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질문은 무뎠고 이 전 지사와의 논리 싸움에서 애초부터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 전 지사의 직진형·사이다형은 장점으로만 통하지 않는다. 외곬·편향 이미지를 낳을 수 있고 이게 본선에서도 통할지는 의문이다. 당 경선은 당원 위주로 치러졌지만 본선은 다르다. 특히 이 전 지사의 편향적 ‘돌격 앞으로’는 중도층의 지지를 흡수하는 데 부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진보·중도·보수층의 비율을 3 대 3 대 3 정도로 잡고 있다. 진보와 보수는 웬만해선 지지 후보를 바꾸지 않지만 ‘스윙 보터’로 꼽히는 중도층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보수와 진보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

중도층에게 ‘이재명을 찍어야 할 이유’를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중도층은 너무 한쪽으로 편향된 이미지를 갖는 후보는 피하게 된다는 것이 여론 조사 전문가들의 일반적 분석이다. 한 전문가는 “국민의힘, 보수를 악마화시키는 것은 지지층 결집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중도층의 마음을 떠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장동 의혹은 ‘아킬레스 건’이다. 초과 이익 환수 조항을 배제해 성남시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게 된 것은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 이 전 지사가 성남시장 재직 당시인 2015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 황무성 사장의 사퇴를 압박한 녹취록 내용에 ‘시장 명’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이라면 직권 남용에 해당될 수도 있다.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지 석 달 가까이 되는 윤 전 총장은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 잇단 말실수와 전략 실패로 점수를 까먹고 있다. 전문가들은 검찰 시절의 리더십과 대선 주자로서의 리더십은 확연히 다른 데도 구별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상명하복이 몸에 밴 검찰 조직에서 요구하는 리더십에 비해 정치 리더십은 훨씬 복잡한 영역이다. 정치 리더십은 대쪽만 필요한 게 아니라 활처럼 유연함도 갖춰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동시키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감성도 필요하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말대로 사자와 여우의 모습을 함께 갖춰야 하는 것이 정치 리더십인 데도 윤 전 총장은 아직 이런 리더십을 접목하지 못해 투박하다는 평이 많다.

국민의힘 후보, ‘험한 말’ 경쟁 통한 ‘노이즈 마케팅’?


윤 전 총장이 정치 입문 뒤 말 실수를 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토론에서 주택청약통장, ‘작계 5015’ 관련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손바닥 ‘임금왕(王)’자 파문에 이어 ‘반려견 사과’ 논란은 윤 전 총장 캠프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준다. 윤 전 총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고발 사주 의혹’에서 현직 검사와의 연루 정황이 드러난 것도 그의 족쇄가 되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이 벌이는 감정싸움도 볼썽사납다. 생산성 높은 공론의 장은 어디 가고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진흙탕 싸움에 국민은 신물이 날 지경이다. “정신머리 바꾸지 않으면 당을 해체하는 게 낫다”고 하자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 등으로 맞받아 친 장면은 마치 ‘험한 말’ 경쟁을 통해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것 같다.

공천 협박 논란도 벌어졌다. 서울대학교 동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올라온 익명의 글이 발단이 됐다.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을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캠프 소속 일부 중진 의원들이 부친에게 매일 독촉 전화를 하고, ‘너네 지역에서 윤석열 후보 득표율이 많이 나와야 공천 줄 수 있다. 안그러면 국물도 없다’는 식으로 협박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홍준표 캠프는 “구태의 화룡점정”이라고 비판했고, 윤석열 캠프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여론 조사마다 ‘정권 교체’ 찬성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과 당 지지율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역시 중도층의 마음을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부동층이 늘어난 것도 민주당뿐만 아니라 국민의힘도 대안 세력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 여론 조사 전문가는 “정권 교체 열망이 많은 데도 윤 전 총장의 잇단 말실수와 후보들 간 꼬투리 잡기식 말싸움으로 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기회를 차 버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