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사건’으로 전국이 들끓고 있다. ‘4인방’이니 ‘키맨’이니 하는 말들이 연일 신문지면에 오르내린다. 이 사건에 핵심 역할을 한 사람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키맨(keyman)이야 외국어이니 그렇다 치고, 4인방은 언제부터 우리말에서 쓰이기 시작했을까? 예전부터 쓰던 말은 아니고, 1970년대 말 수입된 말이다. 그 용법을 알기 위해선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O인방’은 사람에 써야 … 사물에 쓰면 어색해우리 언론에서 ‘4인방(四人幇)’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6년 말이다. “숙청된 중공의 급진좌파지도자들인 모택동의 처 강청을 비롯한 이른바 ‘4인방’은….”(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한 신문은 마오쩌둥 사망 직후 문혁파 숙청과정에서 발생한 중국의 혼란상을 이렇게 전했다. 당시 ‘4인방’과 함께 ‘4인조(4人組)’도 쓰였다. 4인방이 한국에선 안 쓰던 한자말이라 뜻이 비슷한 4인조를 섞어 썼을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지면에 “중공은 … 지난 10월 숙청된 문혁급진파 ‘4인조’의 추종자들과 …” 같은 표현이 보인다.
본래 ‘4인방’은 문혁 기간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 등 4명의 공산당 지도자를 일컫는 말이다. 나중에 이들을 숙청할 때 중국에서 ‘4인방’이란 용어를 썼는데, 한국에서도 이를 그대로 들여다 썼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말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방(幇)’이 무리, 단체, 패거리를 뜻하는 말이다. ‘4인방’이라고 할 때 방은 ‘갱단’이란 의미로 해석하면 맞는다. 그런데 그뒤 중국의 산시방이나 상하이방 같은 용례를 보면 이 말이 딱히 부정적인 데만 쓰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시진핑 주석 등을 비롯한 산시성 출신 요인들을 두루 산시방(陝西幇)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장쩌민 정부 시절에는 상하이 출신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해 상하이방(上海幇)이라고 불렀다. 긍정적 의미 나타내기엔 ‘O총사’가 제격한국에선 1980년대 말 들어 ‘4인방’이 좋은 의미에도 두루 쓰이기 시작했다. “김수녕 등 ‘대표 4인방’ … 한국 여자양궁 라이벌 없다” 식이었다. 더구나 인물 수에 따라 3인방, 4인방, 5인방 식으로 다양하게 쓸 수 있으니 아주 생산성이 좋은 말로 바뀌었다. “‘뽕숭아학당’ 트롯 4인방”, “OOO 사장 등 ‘50대 젊은피 3인방’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다” 등 이런 사례가 넘쳐난다. 말의 쓰임새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바뀌기야 하지만 그래도 좀 어색한 느낌은 남아 있다.
하물며 사람이 아니라 사물에까지 쓰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듯하다. “노후 아파트 4인방 재건축사업 활기.” 오래된 아파트 네 곳을 굳이 4인방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 공감가지 않는 표현이다. “공모주 3인방 분석”, “노후대비 3인방,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등이 다 그렇다.
3인방, 4인방이 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쓰는 데 비해, 3총사나 4총사 같은 표현은 긍정적인 의미자질을 띠는 단어다. 프랑스의 소설가 뒤마가 지은 장편 역사소설 《삼총사》에서 따온 말이다. 지금은 이 말이 의미 확장돼 ‘친하게 지내는 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많이 쓰인다.
핵심인물, 중심인물이란 의미로 ‘키맨’도 널리 쓰인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중추인물’로 다듬었지만 그리 활발하게 쓰이지는 않는다. 우리말 ‘줏대잡이’도 알아둘 만하다. 중심이 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줏대’가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뜻한다. 줏대잡이는 부정적 상황이 아니라 긍정적 맥락에서 써야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