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을 시작으로 지역별 ‘메가시티 육성안’을 발표했다. 광역지방자치단체인 기존 시·도는 그대로 둔 채 ‘특별지방자치단체’라는 행정조직을 새로 만들어 지역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구상이다. 서로 인접한 2~4개 시·도를 하나로 묶는다는 구상이다. 부울경을 필두로 대전·세종·충남·충북, 대구·경북, 광주·전남에도 순차적으로 같은 특별지자체를 발족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방을 권역으로 나누고 서로 묶어 덩치부터 키운 뒤 수도권과 경쟁을 촉진한다는 의도다. 서울과 인접 경기도의 좁은 면적에 국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면서 비롯되는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취지다. 특별지자체의 법적 성격이나 조직 등이 상세하게 구체화되진 않았으나, 네 곳으로 예상되는 특별지자체마다 의회까지 따로 두겠다는 것을 보면 규모부터 만만찮게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조직을 새로 만들겠다는 정부 방침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정부 희망대로 특별지자체라는 새로운 행정조직이 생겨나면 경제·교통·관광 등 지역의 공통 관심사는 잘 풀려나갈까. 반대로 또 하나의 옥상옥(屋上屋) 행정기관이 생겨 불필요한 시누이 같은 역할만 하면서 가뜩이나 비대한 지방행정의 효율만 떨어뜨리는 결과가 될까.
[찬성] 심각한 '지방소멸' 위기…모든 해법 강구해야서울과 전국 각 지역 간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지방은 어디가 사정이 낫고 어디는 못하다고 할 상황도 안 된다. “지역 공멸의 위기”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지경이다. 인구 감소가 그 결과이자 원인인데, 특히 청년 인구 감소는 모든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다. 급격한 고령화 때문에 지방 군 단위로 가면 아이들 울음소리(신생아)가 나오지 않은 지 오래됐다는 곳이 허다하다. 산부인과 병원이 없는 곳도 적지 않다. 부산을 비롯한 광역시에서조차 청년 인구가 줄어든다는 통계가 나온다. 모두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대학 진학, 취업 등 사회 진출의 첫 관문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떤 조치라도 해야 한다. 지역에 경제 지원을 하는 것은 전통적 대책이다. 하지만 재정에서 직접 지원을 하자니 돈이 없고, 효과도 검증된 바 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면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이런 절박한 처지에서 나온 균형 발전계획이 특별지자체 구성이다. 권역별로 ‘발전 블록’을 유도해 제대로 경쟁이 되게 해보자는 취지다. 이 정도로 수도권 단극 체제로 쏠림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의 편향된 발전 구조를 실효성 있게 보완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기존 시·도와 별도의 지방행정 조직이 될 특별지자체가 기능을 제대로 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예전의 직할시 정도면 조직과 기능이 상당히 큰 게 사실이다. 예산 낭비, 업무 중복은 경계할 일이다. 그래서 신설 조직과 기존 시·도가 업무의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하고, 인접 지자체 간에 제대로 된 협력이 가능하도록 매개체 혹은 중개조직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창의성을 발휘하기에 따라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정도로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가 다 풀릴 만큼 격차가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역 살리기는 이제 시작이다. 더 많은 행정적·재정적 지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대] '옥상옥' 중복행정 우려…행정효율 저하·선거용 의심수도권의 산업과 인구 집중 극복은 국가적 과제다. 지역별로 ‘규모의 경제’가 되게 하는 것도 좋은 해법이다. 그럼에도 기존 광역시와 도, 개별 광역의회는 그대로 둔 채 행정조직이나 더 만들겠다는 발상에는 문제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옥상옥’이 되고, 중복행정이 되면 업무 효율이 떨어지면서 추동력 확보도 어려워질 개연성이 다분하다. 이미 각 시·도에는 경제·산업 관련 부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교통·문화·관광 조직이 충분히 있다. 해당 업무를 잘 알고 지금까지 꾸준히 해온 이런 현업 부서끼리 ‘협의체’ 형식으로 공통 현안의 해법을 찾는 게 행정 비대화를 막고 업무 효율을 높이는 길이다. 주요한 사안이나 긴급한 현안이 생긴다면 시장, 도지사 등 단체장들이 머리를 맞대 결정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과제가 생기면 조직부터 만들고, 예산(돈)타령이나 하는 것은 한국 행정의 해묵은 관행이다. 이런 타성적이고 퇴행적인 접근법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의회까지 딸린 특별지자체를 만드는 데도 갑론을박으로 날을 샐 것이다. 막상 만들어도 추가로 들어가는 재원 문제가 불거질 것이고, 법적인 권한과 책임 문제로 논란거리가 이어질 게 뻔하다. 한국적 전통 아닌가.
더욱 의구심이 들고 아쉬운 점은 이처럼 중요한 중장기 국가발전전략을 대통령 임기가 5개월도 남지 않은 현 정부가 뒤늦게 내놓는가 하는 것이다. 과거 정부의 지자체 통폐합 논의도 이런 식으로 접근하다보니 공론(空論)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정권 초반에 밀어붙일 ‘힘’이 있을 때 시도해도 버거운 사안이다. 지역행정 개편은 정권이 물러나는 마무리 시기에 그럴듯한 청사진이나 내놓는다고 되는 그런 아젠다가 아니다. 이러니 대통령선거와 바로 이어지는 전국 일제 지방선거에 대비한 선심용이라는 비판까지 받는 것이다. 지역 발전은 지역민에게 환상만 던져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 실질적이고 점진적인 개선책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 √ 생각하기 - 시·도 통합돼야 실효…공무원·의원 '지역 기득권' 극복이 관건진정한 지역 발전, 명실상부한 다극 체제의 균형성장을 도모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자면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의 4개 권역 시·도가 말 그대로 하나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가 지역에 배당해주는 교부금(교부세)이나 조금 더 주는 정도가 아니라 재정·과세권에서부터 독립 권한을 과감하게 주는 것도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논의만 무성한 대구·경북, 광주·전남의 통합이 부진한 이유가 주민 동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지역 공무원, 지방의회, 지역 국회의원 등 지방을 기반으로 삼는 기득권 고수 탓은 아닌지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정도의 분권 발전을 꾀한다면 ‘부울경 단일 시’가 나와야 한다.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힌 문제여서 정부와 지역이 뜻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만의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역의 언론과 학계도 함께할 과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