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은행이 시장금리가 지나치게 빨리 오른다고 보고 속도 조절에 나섰다. 국고채와 통화안정증권 발행 물량을 당초 예정보다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그만큼 기관투자가의 채권 투자 여력이 커지고 다른 채권을 산다면 금리가 조금 내려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한은이 기준금리 정상화를 선언한 만큼 시장금리 상승세를 멈춰 세우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기획재정부는 28일 재정운용전략위원회를 열고 다음달 국고채 발행 예정 물량을 줄이기로 했다. 기재부가 이날 공고한 다음달 국고채 발행 물량은 8조원 규모다. 올 1~9월 월평균 16조8300억원 규모로 발행했던 것에 비해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10월 12조5450억원보다도 4조5000억원 적다. 11~12월 잔여 발행 한도가 22조원가량 남아 있지만 금리 인상폭 조정 등을 위해 발행 물량을 줄이기로 했다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기간별로 보면 2~3년 단기채 발행이 급격히 줄었다. 다음달 국고채 3년 만기 발행 물량은 1조원 규모로, 전달의 절반 수준이다.
안도걸 기재부 2차관은 “최근 변동폭이 과도한 단기물을 중심으로 발행 물량을 과감하게 축소할 것”이라며 “필요하면 긴급 바이백(매입을 통한 조기 상환)을 시행하거나 한은과의 정책 공조로 국채시장 안정에 선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은도 다음달 통안증권 발행액을 이달보다 2조4000억원 줄이고 중도환매(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통안증권을 되사주는 것) 규모는 1조원 늘리기로 했다. 이 계획에 따라 한은은 다음달 통안증권 발행 규모를 6조6000억원, 중도환매 규모는 5조원으로 설정했다. 통화안정증권은 한은이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기 위해 발행하는 단기 채권이다.
한은 관계자는 “통안증권 발행량 축소 등으로 채권시장에 3조4000억원가량의 투자 여력이 확충될 것”이라며 “투자 심리가 좋아지고 금리 변동성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한은의 조치에 시장도 반응했다. 전날 연 2.044%에 장을 마치며 2018년 10월 24일(연 2.007%) 이후 처음 2%대를 넘어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이날 오전 연 2.1%대를 넘어서며 급등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오후 들어 하락세로 전환해 전날보다 0.027%포인트 내린 연 2.017%에 마감했다. 하지만 이달 들어 3년 만기 국고채 금리의 상승폭은 0.424%포인트에 이른다.
시장금리가 단기간 급등하고 있는 것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과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지속 때문이다. 시장에선 한은이 다음달과 내년 1월에 한 차례씩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내년 1분기 이후에도 한은이 한두 차례 금리를 인상해 내년 말 기준금리를 연 1.5~1.75%까지 올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2.5% 이상 올라도 이상할 게 없다.
한은은 시장금리가 기준금리 인상 속도와 비슷하게 올라주길 바라고 있다. 기준금리가 연 0.5%로 최저였을 때 3년 만기 국고채 금리 최저치는 지난해 8월 5일의 연 0.795%였다. 그사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됐지만 국고채 금리는 1.2%포인트 이상 뛰었다. 시장금리가 뛰면 부채를 짊어진 가계 기업 정부 모두 부담이 커진다. 일각에선 한은이 ‘매파적 시그널’만 쏟아내 시장금리 템포 조절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정부 씀씀이가 불어나는 것도 금리를 밀어올렸다. 확장재정을 예고한 정부가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어서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 본예산보다 8.3% 늘린 604조4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시장금리 상승세는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고 있어서다. 한은은 지난 27일 ‘우리나라와 미국의 주요 물가 동인 점검’ 보고서에서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익환/강진규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