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이 미덕인 시대다.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 자본주의는 늘 속도를 강조하고 있다. 기업은 빨리 생산해야만 하고 소비자는 빨리 소비해야만 한다. ‘ASAP(as soon as possible: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일 잘하는 사람의 행동 습관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빠른 것이 항상 좋은 것일까.
최근 미국 서점가에서 인기인 책 《롱게임(The Long Game)》은 지나치게 빠르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문화가 개인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조직의 성공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쇼트텀 시대에 롱텀 사상가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 책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벗어나 흥미롭고 의미 있는 삶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포브스가 선정한 ‘최고의 비즈니스 사상가’이자 듀크대 경영대학원과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도리 클라크 교수는 곧 우리 앞에 펼쳐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롱텀 전략’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나치게 분기별 이익을 신경 써야만 하는 기업의 경영진은 장기적 성장을 위한 전략적 투자를 결정하기 힘들다. 눈앞에 닥친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 직원은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클라크 교수는 단기간에 집중해 설익은 과일을 따 먹는 쇼트텀 사고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진단하면서, 재촉하고 압박하고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길게 바라보고 여유 있게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빨리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천천히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구글의 혁신 전략으로 잘 알려진 ‘20%의 시간’은 가장 대표적인 롱텀 전략이다. 구글 직원은 일과 시간의 20%를 일상적인 업무와 관련이 없는 모험적인 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다.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면 실행할 수 없는 아이디어지만, 구글 직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5분의 1의 시간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데 쓸 수 있다. 코로나19가 증명했듯, 우리 앞에는 언제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와 도전이 다시 닥쳐올 수 있다. 불확실성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앞으로 필요로 할지도 모르는 기술과 지식을 연구하고, 그것을 연결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또 다른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롱텀 전략에서는 ‘실패’도 다르게 해석된다. 단기적으로 생각하면 실패가 부정적 사고를 악화시키고 또 다른 도전을 방해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실패는 전혀 다른 의미다. “실패를 곱씹어라! 장기적으로 볼 때 통계는 당신 편이다. 당신이 충분히 실패하고 도전할 때 성공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클라크 교수는 롱텀 전략에서 실패는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롱게임》은 쉬워 보이고, 보장돼 있고, 당장 화려해 보이는 일을 우선시하는 우리 문화에 경종을 울린다.장기적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작은 일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시켜 주면서, 비록 당장은 무의미하고 따분하고 어려워 보여도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어떤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알려준다.
홍순철 < 북칼럼니스트·BC에이전시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