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산사로 떠납니다. 산사로 가는 길에선 왠지 청량한 향기가 나는 듯합니다. 바람 소리, 물 소리, 새 소리를 벗 삼아 걷다 보면 세속의 번뇌가 시나브로 씻겨지는 듯합니다. 올가을에는 경상남도 밀양의 작은 절인 만어사(萬魚寺)로 떠났습니다. 1만 마리 물고기에 관한 전설이 있는 만어사는 무려 2000년의 세월을 견딘 고찰(古刹)입니다. 단풍이 가득하진 않아도 마음의 평화를 얻기엔 더없이 좋은 나들이였습니다. 1만 마리의 물고기 같은 너덜이 펼친 절경경남 밀양 남쪽 삼랑진에 있는 만어산을 차로 오르다 보면 중턱쯤에 작은 절이 보인다. 만어사다. 만어사는 규모는 작지만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에 나올 정도로 오래된 절이다. 금관가야를 세운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 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니 역사가 2000년 가깝다. 창건 이후 왕들이 불공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됐고, 고려 명종 10년(1180년)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만어사는 보물 제466호 삼층석탑과 근래에 지은 대웅전, 범종각, 삼성각이 전부인 조촐한 산중 사찰이다. 기이하게도 만어사의 가장 큰 볼거리는 사찰 앞마당을 가득 뒤덮고 있는 돌들이다. 크고 작은 돌이 쏟아져 내린 듯 널브러져 있는 곳을 흔히 ‘너덜겅 지대’라고 하는데, 전국의 너덜겅 지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풍광이 빼어난 곳이 바로 만어사 주변이다.
만어사의 너덜겅은 폭이 약 100m, 길이는 500m나 된다. 만어사는 바로 이 돌들을 1만 마리 물고기에 비유한 명칭이다. 한여름 소나기가 내린 날이면 수많은 물고기가 주둥이를 물 위로 내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풍광이 펼쳐지는데 전설이 따라붙지 않을 리 없다.
동해 용왕의 아들이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깨닫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이란 곳의 신승(神僧)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했다. 신승은 용왕의 아들에게 ‘가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말해줬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자 수많은 물고기 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그가 멈춘 곳이 만어사다. 만어사에 이르자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했고, 그를 따르던 물고기들은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고 한다. 전설처럼 만어사의 돌들은 마치 물고기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돌들을 두드리면 맑은 종소리가 나서 만어산 경석이라고 부른다. 화강암의 성분에 따라 소리가 조금씩 다르다.
경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대웅전 옆에 있는 높이 5m의 자연석이다. ‘미륵바위’ 또는 ‘미륵불상’이라고 한다. 전설 속 동해 용왕의 아들이 변한 돌이다. 보존 상태가 너무나 좋아서 기나긴 세월을 견뎌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미륵바위는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 갑오농민전쟁, 경술국치, 3·1만세운동,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등 역사적 격변의 시기마다 돌의 오른쪽 면에서 마치 눈물을 쏟듯 물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신비한 이야기 때문인지 미륵바위에 기원하면 아기를 낳지 못하던 여인이 득남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만어사의 돌도 특이하지만 사찰 마당에서 바라보는 첩첩의 산 능선이 절경이다. 마치 진경산수화처럼 산이 겹쳐 있는 운해는 밀양 8경으로 꼽힐 정도로 매력적이다.
만어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신라 때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저수지가 있다. 경상남도의 문화재 자료이기도 한 위양지다. 저수지 주변의 수백 년 된 이팝나무가 물속에서 자라고 있는 모습은 이색적이면서 경이롭다. 아침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저수지에 깔리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위양지는 사철 모두 아름답지만 봄에 특히 아름답다고 한다. 저수지 둘레의 오래된 이팝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저수지 가운데 5개의 작은 섬과 완재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 완재정은 안동 권씨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재실로, 1900년에 조성된 정자다. 건축 당시 완재정은 배로 출입하도록 했지만 지금은 길을 놓아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가수 아이유가 주연으로 나온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 같이 가볼 만한 곳 - 금시당 백곡재
밀양강 지류인 남천가에 있는 금시당은 1566년 조선 명종 때 좌승지를 지낸 학자 이광진이 고향에 내려와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집이다. 이광진은 《중종실록》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밀양강이 굽이치는 언덕 위에 금시당을 짓고 노년을 보냈다. 금시(今時)는 지금이 옳다는 뜻. 금시당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는데 이광진의 5대손 백곡 이지운(1681~1763)이 복원했다. 백곡재는 이지운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재사(齋舍)로 금시당 동쪽 축대 위에 있다. 금시당 백곡재의 자랑은 이광진이 직접 심었다는 450년 된 은행나무다.
밀양=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