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물태우’라고 불렀다. 직전 대통령의 강성 이미지에 비해 ‘물렁한 캐릭터’ 때문이었을까. 물에 물 탄 듯 우유부단한 성격 탓이었을까. 당사자인 노태우 대통령은 정작 이 별명을 좋아했다. 프랑스 교민들과 만났을 때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는 과정을 보면 물의 힘은 참 크다”며 “‘물대통령’이란 별명 참 잘 지어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거 과정에서 ‘보통사람’을 강조했던 그가 “나를 코미디 소재로 다뤄도 좋다”고 말한 뒤로는 ‘물태우’가 코미디 단골 메뉴가 됐다. 국정 운영에서도 그랬다. 취임 직후 “나는 이름부터 ‘큰(泰) 바보(愚)’니 당신들이 많은 의견을 내 달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보좌진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적극 반영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물렁한 보통사람’이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이끌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별로 없다. 5년간 연 10% 안팎의 성장을 거듭했고, 임금이 115% 올랐으며, 중산층 비율이 75%를 넘어 집집마다 차를 살 수 있는 ‘마이카 시대’가 열렸으니 그럴 만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제정책은 서민의 내집 마련을 돕는 ‘주택 200만 가구 공급’이다. 1988년부터 4년간 새로 지은 집이 272만 가구나 됐다.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수도권 1기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집값을 잡고 주택보급률까지 높였으니 일석이조였다.
또 다른 기억은 의료보험 혜택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그가 1989년 국민의료보험제도를 개정해 의료보험 수혜 비율을 92%로 끌어올린 덕분에 가난한 사람들의 병원비 부담이 줄었다. ‘보통사람’들의 돈 걱정이 줄고 삶이 윤택해지자 해외여행이 함께 늘었다.
이런 성과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건 아니다. 앞서 박정희·전두환 정부가 닦은 토대에 동아시아의 3저(저금리·저유가·저달러) 흐름까지 잘 탔기에 가능했다. 그 덕분에 중국 러시아 등 공산권 45개국과 수교할 수 있었고, ‘원조를 주는 나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동안 일반인의 평가가 역대 최하 대통령이었던 것과 달리 학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는 역대 4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가장 저평가된 정권’으로 꼽히기도 한다. 경제 발전이라는 ‘빛’과 쿠데타 주범이라는 ‘그늘’을 동시에 남기고 그제 세상을 떠난 그의 삶에 먼 훗날 역사는 또 어떤 평가를 남길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