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공연예술계에서 가장 앞선 예술사조를 탐닉할 축제가 열린다. 29일 개막해 12월 5일까지 서울 성산동 문화비축기지, 문래예술공장, 대학로예술극장 등 서울 전역에서 다원예술축제로 펼쳐지는 ‘옵신 페스티벌’이다.
옵신 페스티벌은 평소 접하기 힘든 예술가들을 국내 관객에게 소개하는 예술축제다. 지난해 김성희 예술감독(사진)이 기획해 올해로 2회째다. 축제 이름은 ‘장(scene)’에서 ‘벗어난다(ob)’는 의미를 담았다.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고 예술을 넓게 해석하겠다는 취지다.
축제에선 국내외 예술가들이 각자 개성을 드러낸다. 노르웨이 안무가 잉그리 픽스달은 다음달 4~6일 문화비축기지에서 국립현대무용단과 호흡을 맞추는 ‘내일의 그림자’를 공연한다. 스웨덴 안무가 마텐 스팽베르크는 다음달 12~13일 문화비축기지에서 작품 '휨닝엔'을 무대에 올린다. 춤으로 타자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 지를 짚어보는 작품이다. 행위예술가 정금형은 다음달 6~7일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서 로봇을 조립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현대의 기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을 고찰한다.
올해 축제에서 내놓는 공연들의 주제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진 않다. 다원성을 위해 축제를 관통하는 특정 주제를 세우는 방식을 지양해서다. 대신 작가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전지구적인 위기 속에 예술이 어떻게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지'와 '멀티버스에 관한 예술가들의 시선은 무엇인가'였다. 김 감독은 “예술감독은 주제를 미리 정하고 예술가들을 불러모아선 안 된다”며 “역량 있는 작가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도록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이 축제를 준비하며 유지한 태도는 딱 하나. 예술계에 불고 있는 새로운 흐름을 국내에 여과없이 소개한다는 것이다. 그는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관객들이 현 시대를 비평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끄는 작품들을 선보인다”며 “유럽과 아시아에서 떠오르는 예술가들을 지속적으로 만나 축제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공연에는 신기술도 도입된다. 홍콩 안무가 로이스 응은 가상현실(VR)을 되짚는 공연 ‘현존’을 다음달 11~12일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선보인다. 홍콩과 서울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며 가상현실이란 개념을 관객들이 다시 생각하게끔 유도하는 작품이다. 로이스 응은 홍콩에서 공연을 펼치고, 한국에선 무용수 심하연이 그의 움직임에 조응해 동일한 형상을 보여준다. 대만 작가 차이밍량의 작품도 돋보인다. 그는 다음달 23일부터 12월 5일까지 문화역서울284에서 VR을 활용해 촬영한 작품 ‘폐허’를 전시한다.
김 감독은 다원예술의 불모지로 불렸던 국내에 미국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 이탈리아 연극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 등 공연예술계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해 왔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제현대무용제의 기반을 닦았고, 2007년부터 실험적인 공연이 어우러진 국제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을 혼자 창설했다.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 예술극장 초대 감독을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18 다원예술 아시아포커스’의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