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4시경.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가 10개월 만에 새로운 딜 소식을 공시했다. 중국 홍콩증시에 상장한 제약사 안텐진과의 공동연구 및 기술이전 옵션계약 체결 공시였다. 선수금과 옵션행사비용, 단계별기술료(마일스톤)를 합한 금액은 3억6300만 달러(약 4265억원)였으며 로열티는 별도인 ‘빅딜’이었다.
공시 당일 레고켐바이오의 주가는 전일 종가 대비 3.2% 하락한 음봉. 공시 다음 날인 22일에도 레고켐바이오의 주가는 음봉을 기록했다. 총 금액이 4000억원이 넘는 빅딜에 대한 공시 후 첫날인 만큼 기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장중 4만9000원 넘게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전일 대비 150원(-0.3%) 하락한 4만6400원으로 장을 마쳤다. 빅딜 소식에 힘입어 주가 상승을 점쳤던 투자자들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레고켐바이오의 저조한 주가 흐름은 공시 후 이튿날인 25일에도 이어졌다. 전일 보다 350원(-0.8%) 더 하락한 4만6150원으로 장을 마쳤다. 사흘째인 26일에서야 4만7900원(오후 1시 9분 기준)으로 오름새다.
레고켐바이오의 주가는 큰 흐름으로 볼 때 지난해 12월 30일 7만4900원 선을 ‘터치’한 이후 하락세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 까닭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매년 대규모 기술수출을 해온 레고켐바이오인 만큼 시장과 투자자의 눈높이가 높아져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계약 건도 분명 의미가 크지만 어느 새 시장은 레고켐바이오에는 기술수출에서 한발짝 더 나아간 ‘그 다음’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선수금도 좋고 수천억 단위의 빅딜도 좋지만 LO한 후보물질의 임상이 진행되고 마일스톤을 수령하는 성과를 보여야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실제 레고켐바이오가 2019년 이후 계약한 수천억 원 규모의 빅딜 중 임상을 시작한 후보물질은 아직 없는 상태다. 후보물질을 발굴 중이거나 임상 1상을 준비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레고켐바이오의 주가 흐름에는 국내 투자자들이 흔히 중국 기업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차이나 디스카운트’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애널리스트는 “안텐진이 포선(Fosun)이나 아이맵바이오파마처럼 글로벌하거나 잘 알려진 중국 기업은 아니다”며 “(레고켐바이오가) 계속 커지는 중국 시장을 선점한다는 점은 높게 평가하지만 결국 시장의 눈높이를 만족시키려면 글로벌 빅파마와의 딜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암세포를 표적하는 항체에 암세포 공격을 위한 약물을 붙인 ADC는 2017년에야 비로소 신약이 나와 현재까지도 ‘핫한’ 분야로 통한다. 지난해에만 해도 글로벌 제약사와 신약벤처간의 ‘핫딜’이 여러차례 이어졌다. 길리어드는 ADC 신약 트로델비를 개발한 이뮤노메딕스를 210억 달러(24조4800억원)에 인수했다. 미국 머크(MSD)는 ADC 개발사 시애틀제네틱스에 10억 달러 규모 지분 투자를 진행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또한 다이이찌산쿄와 60억 달러 규모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레고켐바이오는 명실상부한 국내 1위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업체다. 다른 후발주자 업체들도 ADC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기술수출 성과를 낸 곳은 지금까지 레고켐바이오가 유일하다. 1년에 1~2건씩 꾸준히 기술이전 성과를 내는 곳 또한 레고켐바이오뿐이다. 레고켐바이오는 안텐진과의 계약 외에도 올해 공개할 ‘딜’이 최소 한 개가 더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바이오 투자 심리가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올 하반기 시장을 깜짝 놀래켜 줄 딜 소식을 기대한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