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연금(국민·공무원·군인·사학연금)과 4대 보험(고용·산재·건강·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의무 지출액이 내년 90조원, 3년 뒤엔 100조원을 돌파하고, 적자보전에만 20조원 넘는 ‘혈세’를 투입해야 된다는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가 나왔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손쓰지 않으면 복지제도 근간인 공적보험제도를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다.
주지하다시피 8대 공적보험은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는 처지다. 사회보험 의무지출 규모는 각종 복지사업 확대로 내년 복지 예산의 65%에 달하는 91조원으로 커진다. 그러나 공무원·군인연금과 고용·건강·노인장기요양보험 등 다섯 곳이 적자 상태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각각 1993년과 1973년부터 국가 지원으로 메우기 시작했고, 멀쩡하던 고용·건강보험까지 현 정부 들어 선심성 지출이 늘면서 3년 내리 적자로 돌아섰다.
8대 보험 의무 지출은 앞으로 3년 후 100조원으로, 보험 적자보전 규모는 21조원(올해 15조원)으로 늘 것으로 각각 추산됐다. 그동안 흑자였던 사학연금까지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서게 돼 앞으로 적자보전금 규모가 얼마까지 커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이제라도 보험료를 올리거나 지출을 줄이는 대대적인 연금개혁 없이는 공적보험뿐 아니라 나라살림 전체가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게 예산정책처의 결론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대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기금 고갈이나 지출 구조조정, 보장 수준의 적정성, 부정 수급 대응 등 골치 아픈 일은 ‘나몰라라’이고, 건강·고용·산재보험 적용 확대 등 생색내기에만 여념이 없다. 5년 내내 표(票) 욕심에 복지 근간을 무너뜨리고, 미래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 어제 한국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서 청년 10명 중 8명이 현 정부의 이 같은 재정 운용 방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국회라고 다를 바 없다. 예산정책처가 사회보험 재정 위험성을 경고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국회 싱크탱크의 이런 충언에 과연 국회의원 중 몇이나 귀 기울이고 정책 제안이나 법안 발의에 활용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마침 오늘이 이건희 삼성 회장 타계 1주기다. 이 회장은 20여 년 전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고 했다. 이제 기업은 1류가 됐지만, ‘퍼주기’에 열심인 정치권은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정치가 4류도 못 된다는 국민의 비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