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없고 마스크만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사회.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살아 있다면 요즘 우리 사회를 이렇게 그렸을 법하다. 미증유의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으로 인간관계가 파편화되고 고립됐기 때문이다. 일상이 단계적으로 회복되는 엔데믹(감염병 주기적 유행) 시대에도 개인화 추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2》(미래의창 펴냄)에서 극소 단위로 개인화한 ‘나노사회’를 내년 핵심 키워드로 꼽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개개인으로 찢어져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사회가 됐다는 얘기다. 드라마도 예전엔 가족이 같이 봤지만 이젠 각자 모니터로 보는 시대다.
세대 간 단절 또한 심화되고 있다. 자녀들은 방탄소년단(BTS), 부모들은 임영웅에 열광한다. 김 교수는 “10대 시절을 풍요롭게 보낸 X세대(40대)의 개인주의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면서 내년에는 MZ세대에 비해 등한시됐던 X세대가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광고대행사 이노션도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2》(싱긋 펴냄)에서 저마다 자기 개성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트렌드 전문가들이 비대면 시대의 메타버스 활용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또 다른 키워드는 ‘펜트업(pent-up)’이다. 외부 요인으로 억눌린 소비심리가 폭발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해 접촉 없는 연결을 의미하는 ‘온택트(ontact)’를 새 키워드로 제시했던 IT포럼 커넥팅랩이 《모바일 미래보고서 2022》(비즈니스북스 펴냄)를 통해 “내년엔 펜트업에 주목하라”고 권하고 있다.
커넥팅랩이 제시한 펜트업의 승부처는 ‘메타버스’를 비롯해 신소비 영역으로 부상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실시간 양방향 서비스인 ‘스트리밍’, 일상에 스며든 ‘인공지능(AI)’ 등이다. 일상에서는 여행이나 패션·화장품 등의 ‘보복 소비’가 분출할 것으로 봤다. 벌써 사이판·괌 여행 티켓이 불티나게 팔리고 유럽행 예약도 급증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코로나가 사회 변화를 20년 가까이 앞당겼다”고 말한다. 그만큼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우고, 승자독식 산업에서 살아남을 힘을 길러야 한다. 지친 사람을 위한 마음 치유, 가상현실로 정신건강을 돕는 헬스케어 수요도 늘어날 것 같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