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된 이후 갑작스럽게 불거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냐를 놓고 논쟁이 지속되다가 최근에는 각종 인플레와 관련된 용어가 한꺼번에 나돌고 있어 정책당국자와 투자자 모두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인플레는 총괄적으로 비용 상승과 수요 견인으로 나뉘고 비용 상승 인플레는 그 원인별로 그린플레이션·애그플레이션 등으로, 상승속도에 따라 마일드·갤러핑·하이퍼로, 경기(성장률)와 관련해 디플레이션·스태그플레이션·슬로플레이션·골디락스, 정책 의지와 결부돼 리플레이션·디스인플레, 그리고 요즘 뜨는 공유 경제와 관련해 데모크라플레이션도 있다.
인플레 종류별로 증시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인플레가 디플레보다는 낫다. 속도에 따라서는 마일드 인플레가 좋고 통제만 가능하면 리플레이션과 디스인플레 국면에서도 나쁘지 않다. 가장 좋은 것은 골디락스, 가장 나쁜 것은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이 전개될 때다. 요즘 많이 거론되는 슬로플레이션 국면에서는 변동성이 심한 장세가 나타난다.
문제는 최근 인플레 우려가 같은 통화정책 시차(1년 안팎) 내에 모든 가능성이 한꺼번에 거론되는 ‘다중 복합 공선형’이라는 점이다.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 사태가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뉴 노멀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인 코로나 사태는 아무도 모르는 위험이기 때문에 초기 충격이 커 미국 중앙은행(Fed)은 무제한 통화공급으로 대응했다.
어빙 피셔의 화폐수량설(MV=PT, M은 통화량, V는 통화유통속도, P는 물가수준, T는 산출량)에 따르면 통화공급은 그대로 물가로 연결된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 사태는 백신만 보급되면 세계 경제가 ‘절연’에서 ‘연계’ 체제로 이행되고 돈이 돌기 시작하면 ‘쇼크’라는 용어가 나올 만큼 갑작스럽게 인플레 우려가 불거진다.
인플레 지속 여부를 놓고 ‘일시적’이냐 논쟁이 거세질 무렵 각국의 2분기 성장률이 높게 나오자 정책 요인에 의해 촉발된 인플레가 수요 견인 인플레로 옮겨지면서 하이퍼 인플레 우려까지 제기됐다. 오쿤의 법칙(Okun’s law)으로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7월 IMF 전망치 기준)을 평가해 보면 무려 5%의 인플레 갭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퍼 인플레 우려도 잠시, 여름 휴가철이 끝나자마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노동시장을 중심으로 심화된 병목과 기후변화, 공급망 차질 등으로 비용 요건이 악화되자 이번에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급부상했다. 하이퍼 인플레와 스태그플레이션을 사이에 두고 그 정도에 따라 슬로플레이션과 디스인플레, 그 원인에 따라 그린플레이션과 애그플레이션 등도 난무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경제정책, 특히 하방 경직성을 갖고 있는 재정정책보다 통화정책의 역할이 중요하다. 인플레 성격을 잘못 판단해 너무 빨리 출구전략(테이퍼링+금리인상)을 추진하다간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를, 너무 늦게 추진하다간 ‘그린스펀 실수(Greenspan’s failure)’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두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공존하는 여건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선봉장인 Fed가 어떤 행로를 걸을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통화정책 목표와 우선순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Fed는 2012년부터 ‘물가 안정’에다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했다. 양대 목표 간에 충돌할 때는 후자에 우선순위를 둬 통화정책을 운용해 왔다.
우선순위를 더 두고 있는 고용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 여건에서는 인플레가 우려되더라도 금융완화 기조를 변경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지난 7월 회의 이후 Fed가 2013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트리플 버블(금융완화 버블+인플레 버블+테이퍼링 지연 버블)’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통화정책 불가역성’ 때문이다.
최근처럼 다중 복합 공선형 인플레 우려가 나오고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갈피를 못 잡을 때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투자자들은 인플레에 노출된 개별 종목보다 헤지가 가능한 전기차, 인프라, 메타버스, 비트코인 등 글로벌 테마 상장지수펀드(ETF)와 배당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부채를 줄여 현금 흐름을 좋게 가져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