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암호화폐 시장의 역사를 책으로 쓴다면 첫 장에는 이 회사 이름이 나올 것이다. 2013년 문을 연 국내 최초 암호화폐거래소 코빗 얘기다. 코빗은 업비트·빗썸·코인원과 더불어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한 ‘4대 거래소’ 중 하나다. 2017년 게임업체 넥슨의 지주회사 NXC에 인수됐고, 최근 금융위원회에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를 마쳤다.
오세진 코빗 대표(사진)는 “한국 최초의 비트코인·이더리움 거래를 가능하게 한 코빗에는 ‘실험 DNA’가 있다”고 했다. 이 회사는 코인 거래 외에 NFT(대체 불가능 토큰) 매매,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플랫폼, 암호화폐 예치 등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단순 거래소를 넘어 블록체인업계의 실리콘밸리 같은 회사로 성장하겠다”고 했다.
오 대표는 “금융회사 수준에 가까운 리서치 조직을 꾸릴 것”이라며 “분석 보고서를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하고, 금융권 관계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장 돈이 되지 않아도 ‘시장 파이’를 키우는 데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국내 암호화폐 시장은 거래대금이 주식시장과 맞먹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오 대표는 “진짜는 시작도 안 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보다 법인과 기관이 진입해야 이 시장이 제대로 열렸다고 할 수 있다”며 “기관이 비트코인 투자에 뛰어든 미국의 흐름이 국내에도 3~5년 안에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게 되지 못하면 가상자산 거래 시장은 게임 수준에 머물고 말 것”이라는 설명이다.
코빗은 보수적인 경영으로 유명하다. 코빗에 상장된 코인은 66종으로 경쟁사의 3분의 1 수준. 이런 전략은 ‘믿음직한 거래소’ 이미지를 지키는 데 기여했지만 점유율 확대에는 도움이 안 됐던 게 사실이다. 오 대표는 사업자 신고 수리를 계기로 마케팅을 강화하고 상장 코인 수도 늘린다는 구상이다. 그는 “상장을 깐깐하게 했던 건 옥석을 가릴 눈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장의 제도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 대표는 “이제 거래소는 당국의 검증을 받고 높은 수준의 책임도 져야 한다”며 “게임의 룰을 지키는 범위에서 치열하게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우/이인혁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