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실질 탄소 배출량 제로화)을 달성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CO2)를 걸러내는 직접공기포집(DAC·Direct Air Capture) 시설을 늘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DAC 장치가 즉각적인 탄소 저감에 기여할 순 있어도 의존도를 높여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집 기술을 내세우며 탄소 배출 활동을 정당화하거나 연장하는 사례가 나와서다.
20일(현지시간) CNN방송은 지난 달부터 아이슬란드에서 가동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DAC 시설 '오르카'를 소개했다.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탄소 흡수 장치에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서다.
오르카는 매일 약 10톤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있다. 미국에서 하루 800대의 자동차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는 설명이다. 1년 동안 500그루의 나무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과도 맞먹는다.
작동 방식은 간단하다. 팬을 돌려 거대한 진공 청소기처럼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게 첫 단계다. 이때 이산화탄소는 필터에 걸러지면서 공기와 분리된다. 열이 가해지면 이산화탄소는 필터에서 떨어져나와 물과 함께 탄산수 형태로 800m 지하의 현무암질 지층에 주입된다. 이후 탄산염 암석으로 형태가 바뀌며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영구적으로 제거된다.
오르카의 경우엔 주변의 풍부한 지열을 활용해 작동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란 평가다. CNN은 "오르카는 (지구의) 상황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보여주는 우울한 상징인 동시에 인류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라고 전했다.
획기적인 탄소 저감 장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DAC 장치를 방패 삼아 산업계에서 탄소 배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CNN은 "화석연료 기업들도 탄소 포획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며 "이는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화석연료의 피할 수 없는 종말을 지연시키는 방법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탄소포집격리(CCS·Carbon Capture Sequestration) 분야 싱크탱크인 글로벌CCS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건설 중인 전세계의 CCS 프로젝트 89개 가운데 압도적인 수가 석유·석탄업체 등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특히 석유업체는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폐유전에 주입해 석유 시추 공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활용한다고 CNN은 지적했다. CNN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석유업체)의 동기는 훨씬 더 많은 석유를 추출하는 것"이라며 "이산화탄소를 고갈된 유전에 주입하면 일반적인 방법보다 30~60% 더 많은 석유를 추출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CCS가 여전히 논란이 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라고 짚었다.
오르카 건설에 참여한 이산화탄소 저장 기술 업체 카브픽스의 관계자는 "탄소 포집과 저장은 기후변화의 유일한 해결책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화석연료를 태우는 등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