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스탠리가 최근 낸 반도체 보고서의 제목은 ‘겨울이 왔다(Winter’s here)’다. 지난 8월 내놓은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s comming)’보다 전망이 한층 어두워졌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도 ‘메모리 반도체 비관론’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PC에 이어 스마트폰 업체들도 공급망 붕괴로 생산량을 줄이고 있어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제자리를 찾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이다. 올 4분기 D램 가격 하락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락하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4월 5달러를 넘어섰던 D램(PC용 DDR4 8Gb 기준) 가격은 지난 12일 3.61달러까지 떨어졌다. PC를 중심으로 D램 수요가 줄면서 가격이 약세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악재가 하나 더 터졌다. 애플이 통신칩을 비롯한 아날로그 반도체 수급난으로 올해 아이폰 생산량을 1000만 대가량 줄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애플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브로드컴 등에서 필요한 만큼의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등으로 동남아시아에 있는 반도체 공급망에 문제가 생긴 여파다. 애초 애플은 연말까지 아이폰13 생산 목표치를 최대 9000만 대로 잡았지만 8000만 대 정도만 제작이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메모리 반도체업체 사이에선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까지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이 내놓은 보고서들은 PC용 D램 수요에만 주목했다. PC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들이 부품 수급난과 전력난으로 제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 여파로 D램 수요도 줄어든다는 논리였다. 옴디아에 따르면 전체 D램 시장 중 PC용 제품 비중은 21%다. 국내 업체의 D램 매출 중 PC용 제품 비중은 15%가량으로 추정된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연말 모바일 수요가 PC 반도체의 공백기를 메워줄 것으로 기대해왔지만 아이폰 생산 감축으로 이 같은 전망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마이크론에 비해 PC 제품 비중이 작고, 모바일 제품 비중이 크다. 스마트폰 생산 차질이 국내 반도체산업에 더 뼈아픈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모바일 D램은 국내 D램 매출의 30%를 차지해 서버 다음으로 중요한 수요처”라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 중 10%가량이 애플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내년 1분기까지 약세 지속반도체 생산업체의 재고 수준이 낮은데도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골드만삭스는 1주 정도인 공급사 재고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트렌드포스는 4분기 D램 계약가격이 3~8%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고객사 재고가 6~10주 정도로 충분한 데다 공급망 차질까지 겹치면서 메모리 업체들의 가격 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메모리 혹한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 12일 내년 모바일 D램 수요 증가율(비트그로스)이 15%에 그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로 예상되는 올해와 비교하면 저조한 수준이다. 예상치 못한 모바일 수요 타격으로 내년엔 D램 공급 증가율(17.9%)이 수요 증가율(16.3%)을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D램 평균가격도 15~20%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시장 분위기가 바뀔 시점을 내년 2분기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1분기 D램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것이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도 2분기부터는 정상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모건스탠리도 내년 1분기 D램 가격이 바닥을 찍은 뒤 단계적으로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2분기에는 인텔의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인 ‘사파이어래피즈’ 출시도 예정돼 있다. 차세대 D램인 DDR5가 들어가는 제품이다. 이때 서버 업체들의 D램 교체 수요가 대거 발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송형석/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