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국내 최대 유통업체인 이마트 축산팀에 비상이 걸렸다. 삼겹살 수요가 급증하는 휴가철이 코앞인데 수입 돼지고기를 들여오던 해상로가 글로벌 물류대란으로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예정된 날짜가 미뤄지는 것은 물론 아예 선사에서 일정을 취소한 뒤 연락이 두절되는 사례도 허다했다. 결국 이마트는 항공편을 동원해 캐나다산 삼겹살 30t을 들여왔다.
이마트 관계자는 “해상운임이 크게 올랐지만 그래도 항공운임이 훨씬 비싸다”며 “수입 돼지고기 공급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가격이 비싸더라도 공수(空輸)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물류대란에 가격 상승·수입량 감소주요 육류 수출국에서 소·돼지고기 생산량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육류수출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미국의 돼지고기 생산량은 5억4710만 파운드로 전년 대비 6.9% 감소했다. 현지 가격(돼지고기 대분할육 기준)은 지난 8일 파운드당 1.11달러로 작년보다 17%, 2019년보다 43% 급등했다. 초이스 등급 소고기 대분할육 가격도 파운드당 2.86달러로 전년보다 33% 뛰었다. 업계 관계자는 “노동자들의 복귀가 늦어지고 있다. 농장과 육류가공 공장 등도 예외는 아니다”고 말했다.
현지 가격 자체가 높아진 데다 물류대란에 따른 운임비용이 늘어나면서 수입육의 국내 공급은 줄어들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돼지고기 수입량은 21만7709t으로 평년보다 18.7% 감소했다. 국산 고기의 대체재인 수입육이 시장에서 줄어들자 국산 육류값을 다시 밀어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사료용으로 쓰이는 국제 곡물값 상승도 육류 가격을 밀어올리는 요인이다. 사료용 곡물수입단가지수(2015년=100)는 올해 3분기 128.1을 기록한 데 이어 4분기 129.6으로 오를 전망이다.
국내에선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문화 확산과 5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수요를 키웠다. 축산물 거래 플랫폼 미트박스에 따르면 5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된 지난달 6일부터 12일까지 매출이 105억원으로 평년 최고 대목인 추석 전주(9월 13~19일) 매출 104억원을 넘어섰다. ‘재난지원금으로 고기 사먹는다’는 속설이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국내 가계 전체 소비지출액 내 육류 소비 비중은 올 2분기 3%로 2019년 같은 기간 2.3%보다 커졌다.
이마트 관계자는 “수입 육류는 공급이 줄었지만 국산 고기는 공급 측면에선 예년과 큰 차이가 없다”며 “국내 육류물량 중 외식 식당으로 유입되는 물량은 20% 정도에 불과해 80%를 차지하는 가정 소비가 늘어난 것이 고기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소고기 고공 지속·돼지고기는 안정”고깃집 사장님들은 판매가격을 올려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다. 자영업자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가격을 올리자니 손님 발길이 끊길 것 같아 머지않아 가격이 떨어진다면 버텨보겠다’ 등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유통업계에선 육류 가격이 단기간 내 하락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을 밀어올린 복합적인 요인이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고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성탄절과 연말이 낀 4분기 수요가 가장 높다. 이마트 관계자는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지만 주요 소고기 수출 지역인 북미와 남미 물류 상황이 특히 좋지 않다”고 말했다. 농촌경제연구원도 소고기 가격에 대해 “높은 수요가 지속돼 당분간 현재 가격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돼지고기 가격은 하락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세계적으로 돈육 가격은 고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 데다 소고기에 비해 생산지가 유럽 등 다양하기 때문이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