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학연구소와 서울대노동법연구회, 한국노동법학회는 16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서암홀에서 '2021년, 단체교섭'을 주제로 가을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나온 판정문이 대상이었다. 대법원 판결도 아닌 중노위 판정문을 두고 다수 학자들이 집중 논의를 펼치는 일은 흔치 않지만, 이 판정은 며칠 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장에서도 공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바로 CJ대한통운과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사이에서 벌어진 '단체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지'를 두고 나온 중노위 판정문이다. 중노위가 쏘아올린 '사용자성 확대' 논의 중노위는 지난 6월 2일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섭 거부'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인용해 "CJ대한통운이 대리점주와 함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정했다.
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할 의무는 노조법상 '사용자'가 진다. 이 판정은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의 노조법상 사용자는 CJ대한통운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CJ대한통운이 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다.
이 판정은 산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CJ대한통운만이 아니라 하청업체나 위탁업체를 두고 있는 기업들도 촉각을 기울였다. 이에 대한 관심은 2013년 통상임금을 두고 내려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연상될 정도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를 예측한 중노위는 판정 직후 판정의 법적 근거를 담은 보도자료를 내놨다. 판정문 외에 보도자료를 내는 것도, 판정 직후 별도 입장을 내는 것도 유례 없는 일이었다. 법리적으로 준비됐다는 자신감이다.
몇몇 노동법학자들이 중노위 판정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학계 역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수많은 공개·비공개 형식의 토론과 논의의 장이 열려왔다. 이번 공동학술대회도 그 일환이다.
이 판정에 불복한 CJ대한통운은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결론이 나올 때까지 학계와 산업계 전반을 걸친 '법리 전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대법원 판결의 '지배력설', 이 사건에 인용 가능할까<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직접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당사자 사이에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할 수 있나"
하청근로자의 근로계약 상 사용자는 하청인데, 하청을 넘어 원청까지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하려면 이론적 근거가 필요하다.
중노위는 이 '사용자성 확장'의 근거로 2010년 대법원이 현대중공업 판결에서 제시했던 '지배력설'을 들었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 조건을 지배·결정할 정도로 사실적·법률적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면 노동조합법(노조법) 상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확장 이론이다. CJ대한통운이 사실상 택배기사들의 근로조건을 결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2010년 대법원 판결은 당시 중노위에서 내린 판정의 적법성을 판단하는 내용이었는데, 이 판정도 박수근 위원장(당시 한양대 교수)이 참여한 중노위에서 내렸다. 11년을 관통하는 박 위원장의 이론적 일관성을 엿볼 수 있다.
이날 학술대회 첫번째 발표자로 나선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000년대 이후 다수 판결이 2010년 대법원 판결의 '지배력설'을 단체교섭 거부 부당노동행위에 적용하고 있다"며 사용자성 확대의 흐름이 있다고 설명했다. 윤 연구원은 올해 2월 대법원에서 확정된 삼성전자서비스 형사 판결 등을 근거로 들었다.
다만 경영계에서는 지배력설은 부당노동행위 중에서도 '지배·개입'(노조법 81조 4호)의 경우에 적용된 이론이기 때문에, '단체교섭'에서 사용자성 확장에까지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반박도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판결도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한 판결이다.
이에 대해 세번째 발표자로 나선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법에서 단체교섭제도와 부당노동행위제도는 연동돼 기능하고 있다"며 "두 제도의 사용자 개념을 달리 파악하는 것은 노조법 체제의 정합성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단체교섭이 근로계약을 전제로 한다는 주장은 한 측면만 부각시킨 논리"라며 "노조법 29조 1항은 근로계약관계가 없어도 사용자단체와 노조대표의 사이의 단체교섭이나 단체협약 체결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 첨예한 대립이 이뤄지고 있는 쟁점이다. 경영계에서는 "지배·결정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사업주를 폭넓게 사용자로 인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에 반할 수 있다"는 반박을 하고 있다.
지배력설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 연구원은 "지배력설의 한계를 넘어 사업의 측면에서 지배력을 파악해야 한다"며 "자신의 사업장에서 혹은 자신의 사업을 위해 노동력을 이용하고 있다면 노동법의 사용자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플랫폼 사업자 등 다면적인 사용자에 대한 사용자성 확장이 가능해 질 수 있다.
토론자로 나선 임상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는 "1차 하청을 넘어 2, 3차 납품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임금 등 근로조건도 현대중공업이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전부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주장하고 결렬 시 현대중공업 사업장서 직장점거를 할 수 있다는 뜻이라면 노동정책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법체계 문제 어떻게 해결하나 그렇다면 고용주(하청)와 사업주(원청)가 교섭의무를 진다면, 하청의 교섭권은 어떻게 봐야 할까.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할까. 현행 법체계에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고용주와 사업주가 교섭의무를 병존해서 부담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교섭 사항에 대해 각각 자신의 권한과 지위에서 독자적 교섭의무를 진다"고 밝혔다. 노조가 선택을 하던지 양자 모두에게 요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 밖에도 이 교수는 노동위원회가 노조의 쟁의조정 신청을 거부해서는 안된다고도 지적했다. 단체교섭의무가 있는지를 쟁의조정 단계에서 검토해야지, 조정 신청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를 경우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지 않아도 쟁의조정을 통해 사용자성을 판단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경영계에서는 파업권 획득이 용이해질 수 있어 현장에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법원은 노동위원회의 조정이 쟁의행위의 전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어서 큰 의미가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문무기 한국노동법학회장(경북대 교수)와 이철수 서울대노동법연구회장(서울대 교수)이 각각 개회사와 환영사를 했다. 윤애림 연구원, 정영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 이승욱 교수가 각각 발제를 맡았으며, 토론에는 임상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한인상 국회 입법조사처 박사,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 김미영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박사가 나섰다.
이날 학술대회는 판정문에 공감대를 형성한 학자들이 주로 나선 모양새다.
이번 학술대회로 학계의 논리 대결은 더욱 뜨거워질 가능성이 높다. 또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이 파업 중 업무를 방해한 것에 대한 형사재판 하급심 판결이 선고를 앞두고 있는 데다, 이 판정을 지렛대 삼아 유사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에 경영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현재 단체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지를 두고 대법원에서 다른 사건이 계류 중"이라며 "1심과 2심은 모두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봤지만 이 대법원 판결의 결론이 추후 학계 및 업계의 논의에 큰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