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7월 14일, 2030년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이상 감축시키는 방안을 담은 정책 패키지인 ‘Fit for 55’를 발표했다. 해당 패키지에는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이하 CBAM)가 포함되면서 각국은 CBAM으로 인한 영향을 예측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CBAM이란, EU 역내에 물품을 수출할 때 수출국의 탄소 비용을 고려해 일종의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CBAM은 원칙적으로 EU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적용된다. 다만 EU ETS(탄소배출권거래제) 제도와 연계 가능한 지역이나 자체적으로 ETS를 도입하고 있는 스위스 등은 제외다. CBAM은 2023년 1월 1일부터 발효되나 2025년까지 과세 의무는 없고 탄소 배출량 및 해외에서 지불된 탄소가격 등에 대한 정보의 분기별 보고만을 의무로 한다.
발효 시점부터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력 산업에 우선 적용되며 2026년 이후 EU ETS 제도에서 무상 할당이 제외되는 업종을 대상으로 확대된다. CBAM은 EU 역내 수입업자가 CBAM 적용 품목을 수입할 때 탄소배출량 만큼의 CBAM 인증서(탄소 배출량 1톤 당 인증서 1개)를 구매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때 원산지 국가에서 탄소 비용을 이미 지불한 경우, 수입업체는 수출업체로부터 탄소 비용 지출에 대한 증명서를 받아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감면 요청할 수 있다. 만약 수출업체에서 탄소배출량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신뢰성 있는 정보가 아닐 경우, 상품군별 기준치(EU 벤치마크)를 적용받는다. EU 사업장 하위 10% 평균 배출량이 벤치마크로 적용되기 때문에 매우 불리하다. CBAM 법안은 향후 입법 과정에서 당초 공개된 내용이 수정되거나 벌칙 규정이 강화될 수 있어 주의를 요한다.
CBAM 법안 주요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EU 미가입 국가로서 해당 법안 적용 대상으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CBAM이 국내 경제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한국은행이 올해 7월 발표한 보고서 ‘주요국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EU CBAM 부과로 인해 한국의 EU향 수출은 연간 0.5%(약 32억 달러, 한화 3조 6608억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분석은 EU 수입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에 대해 톤당 50달러의 관세를 부과하는 상황을 전제로 했다.
산업별로 보면 한국의 경우 철강 산업이 특히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철강을 가공한 금속제품은 연간 1억 3500만달러(약 1539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율로 따지면 2.7%의 추가 관세가 부과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추가 비용은 분석에 사용된 가정(탄소 직간접 배출량 모두 포함, 탄소가격 톤당 30유로, 수출품 탄소 함유량 376만 톤)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탄소 중립 기조 및 탄소배출권의 최근 증가 추세로 볼 때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더 높다.
CBAM으로 인한 타격이 엄중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위기 상황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EU 시장 점유율이 높으나 탄소배출권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러시아, 터키 등이 받는 타격이 한국보다 크다는 점, 개별 상품별 탄소배출량의 추적 가능성에 따라 기업 간 CBAM 부과액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우리 기업들은 오히려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여지도 있다. 따라서 기업은 RE100, Net Zero와 같은 ESG전략 실행과 더불어, 기존의 원가회계시스템에 제품별 탄소배출량을 추적·배부할 수 있도록 고도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더 나아가 2026년 이후 CBAM 본격 시행에 대비하여 기업 자체만이 아닌 공급망 전체로 범위를 확대해 탄소를 저감하는 경영 전략도 필요하다. 정부는 EU와 원활히 소통하며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의 비교 우위를 알리고,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를 국제기준과 호환·통용되도록 정비해야 한다. 민관 협력을 토대로 위기의 상황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바꾸고 국내 기업이 글로벌 시장 재편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