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회장은 일제강점기 ‘2등 시민’이라는 차별을 당하면서도 일본에서 롯데라는 그룹의 시초를 닦았습니다. 불리함 속에서도 온 힘을 다해 부딪혀보는 ‘신격호 정신’을 이젠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스타트업이 갖춰 해외로 도전할 때입니다.”
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사진)는 지난해에만 2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최근에는 읽는 양을 더욱 늘렸다. 물리학, 생물학, 정보기술(IT) 등 분야도 가리지 않았다. 보유한 기술도, 인재도 각기 다른 스타트업 중 ‘옥석’을 골라 해외로 보내려면 그만큼 ‘열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롯데벤처스는 오는 27일까지 국내 스타트업의 실리콘밸리 진출을 돕는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참가기업을 모집하고 있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기를 맞아 진행하는 이번 프로그램에서 13개 기업에 총상금 5억원을 시상하고, 25억원 규모의 기업 투자도 진행할 계획이다.
프로그램 준비로 한창 바쁜 전 대표를 지난 13일 만났다. ‘신격호 정신’에 가장 잘 들어맞는 스타트업은 과연 어떤 곳일까? 전 대표는 “스스로 기회를 찾아 도전하고, 우리 사회를 더욱 발전시키려는 기업가 정신이 바로 ‘신격호 정신’”이라며 “상금 및 투자금액도 신 명예회장이 일본에서 처음 마련했던 창업금액 6만엔의 현재 가치에 맞춰 정했다”고 말했다.
롯데벤처스는 2016년 롯데그룹이 설립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다. 목표는 ‘롯데를 망하게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보유한 기업’을 찾아내는 것. 출범 당시 신동빈 회장이 사재 50억원을 내놓으며 직접 이같이 주문한 일화로 유명하다. 그동안 발굴한 초기 기업만 180여 개, 이들의 기업가치는 1조원이 넘는다. 세계 최초의 자율주행 서빙로봇을 개발한 베어로보틱스, 사이버 보안 분야 ‘유니콘’으로 주목받는 센스톤, 인공지능(AI)으로 쓰레기를 선별하는 로봇을 개발한 슈퍼빈 같은 업체들이 롯데벤처스가 발굴한 대표적인 업체다.
전 대표는 “이제는 우수한 국내 스타트업들이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두드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꿈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도네시아, 유럽, 일본 등 스타트업이 파고들 시장이 여전히 많다는 얘기다.
수많은 스타트업을 키우는 롯데벤처스의 수장을 맡고 있는 전 대표지만 사실 그는 ‘벤처 전문가’는 아니다. 롯데그룹 내 인재교육을 총괄하는 롯데인재개발원장을 지낸 ‘인사관리(HR) 전문가’다. 하지만 HR전문가라 오히려 스타트업을 잘 살펴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롯데의 수많은 계열사가 인재개발원을 거칩니다. 자연스레 수많은 업종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죠. 거기다 수십년간 사람 보는 일을 했으니 조금 더 신중하게 대표 한 사람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천재성’도 중요하지만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리더십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롯데벤처스는 스타트업 해외 진출 프로그램을 더욱 확장할 계획이다. 전 대표는 “이번에는 실리콘밸리 중심이지만 베트남, 일본 등 롯데가 ‘교두보’를 놓을 수 있는 곳이라면 적극 지원해줄 것”이라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