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반도체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글로벌 제조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반도체 회사들이 제대로 수익을 챙기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반도체 기업의 주가 약세 원인으로 핵심 조립시설이 자리잡고 있는 동남아시아에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돼 공급난이 풀리지 않은 점을 꼽았다.
WSJ에 따르면 반도체 생산 부족이 최근 들어 더욱 심해지고 있다. 금융분석 업체인 서스키해나의 크리스토퍼 롤랜드 분석가는 “반도체 주문을 받은 뒤 실제 납품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리드타임)이 작년 말 13주를 조금 웃돌았는데 올 3분기엔 평균 22주 걸렸다”며 “2013년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뒤 리드타임이 이렇게 치솟은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특정 반도체 부문에선 이런 현상이 훨씬 심각하다. 차량의 전자장비를 제어하는 핵심칩인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의 리드타임은 32주나 된다. 종전 평균치 대비 세 배가량 더 걸리는 시간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잇따라 생산량 목표를 하향 조정하고 나선 배경이다. 시장조사기관인 IHS마킷은 내년 경차 생산량 전망치를 종전 대비 9.3% 낮췄다.
MCU 칩 공급업체인 마이크로칩의 가네시 무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투자설명회에서 “내년 중반까지는 생산 시설 정상화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반도체를 제조할 때 반드시 필요한 회로기판 등 부품이 부족한 것도 반도체 생산 공정을 늦추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CEO는 “일부 부품이 부족해 제품 출하량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이 공개한 현재 분기의 수익 전망은 월가 평균치 대비 11% 낮다.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전망을 놓고서도 해석이 엇갈린다. S&P 글로벌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를 구성하는 24개 기업의 3분기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23% 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쁘지는 않지만 전분기의 38%보다는 확연히 둔화한 증가세다. 대만 최대 반도체 기업인 TSMC가 올 3분기 매출이 19% 성장했을 것이란 게 팩트셋의 예측이지만, TSMC는 지난 1년간 분기 평균 25%씩 성장해왔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