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4시(현지시간)께 미국 UC버클리(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 있는 경제학과 건물 ‘에번스홀’ 후문 벤치엔 백발의 노교수를 중심으로 피부색이 다양한 7~8명이 서서 플라스틱잔에 와인을 담아 마시고 있었다. 이날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로 결정된 데이비드 카드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66)와 그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제자들이었다.
카드 교수는 스웨덴 노벨위원회로부터 교육 이민 임금 등이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았다. 약 3시간 동안 와인 4~5병을 비우며 이어진 축하연에서 카드 교수와 제자들은 연구 업적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의 노동시장, 아마존 같은 빅테크의 경영 전략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해 질 무렵 기자가 카드 교수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질문을 하자 그는 “연구실로 함께 올라가자”며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빅테크 얘기가 나온 김에 가장 먼저 인공지능(AI) 같은 첨단기술이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물었다. 카드 교수는 “AI 같은 발전된 기술은 언제나 인간 일자리의 일부분을 대체한다”며 “하지만 인간에겐 결국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지루한 육체노동에서 해방된 인간이 다른 생산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AI, 자율주행 같은 신기술이 저숙련 근로자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임금을 감소시킬 것이란 통념에 대해서는 “수요와 공급을 생각하지 못한 엔지니어들의 생각”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인구구조의 변화 때문에) 세계적으로 저숙련 노동자 수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공급 감소가 수요 감소보다 빠르면 오히려 임금이 상승할 수 있고 이에 대해 연구하는 게 경제학자의 역할”이라고 했다.
카드 교수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로는 쿠바 이민자들의 미국 마이애미시 노동시장 유입이 고용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이 꼽힌다. 그에게 외국인 근로자와 관련된 한국의 이민정책 방향에 대해 조언을 구하자 “일본은 외국인 이민 유치에 소극적이었고, 그 결과 경제도 가라앉았다”는 얘기를 먼저 꺼냈다. 이어 “한국의 이민정책은 단순히 경제적인 이슈가 아닌 것을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같은 국가처럼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경제를 확장하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카드 교수는 향후 양성평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천착할 계획이다. 그는 “경제와 과학 분야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이 확대되면서 ‘50 대 50’을 원하는 양성평등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며 “과거와 다른 양상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경제 조직에 미칠 영향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인 휘도 임번스 스탠퍼드대 교수(59)는 이날 온라인 간담회에서 “기본소득처럼 ‘보장된 불로소득’이 클수록 근로 인센티브가 줄어들 수 있다”며 “일할 의욕을 낮추기 때문에 노동시장 참여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공동수상자인 조슈아 앵그리스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62)는 “좋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면 더 나은 인생을 살 것이란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다”며 “이 같은 ‘선택 편견(selection bias)’을 줄이기 위한 실증적 방법을 찾는 데 천착해왔다”고 말했다.
실증적 계량경제학을 연구한 두 교수는 절친한 친구 사이다. 임번스 교수의 부인 역시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수전 애시)로 차기 미국경제학회 회장으로 선출된 상태다.
버클리=황정수/뉴욕=조재길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