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K드라마’ 돌풍을 일으킨 ‘오징어게임’을 다룬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10월 9일자)의 관점이 흥미롭다. 정작 한국에서는 “그렇게 대단한 작품이란 말인가”라며 어리둥절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자국 내 드라마 시청률 순위에서 ‘Hometown Cha-Cha-Cha(갯마을 차차차)’에 1위 자리를 내줬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냉소를 담은 기사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해 오스카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면서 ‘세계적으로 막강해진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outsize cultural power on the global stage)’을 역설적으로 조명했다.
‘오징어게임’과 ‘기생충’에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 콘텐츠시장 개방을 글로벌 무대 도약의 날개로 삼았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방송과 영화업계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방송연출자(PD)들은 이웃나라 일본 방송의 최신 프로그램을 베끼기에 바빴고, ‘방화(邦)’로 불린 국산 영화 사업자들도 할리우드를 적당히 흉내 낸 작품에 안주했다. 정부가 외국 방송프로그램과 영화의 국내 진입을 제약하는 울타리를 쳐준 덕분이었다.
‘문화 쇄국주의’에 제동을 건 국제 여론에 등 떠밀려 1999년 대중문화시장을 개방하고, 2006년 스크린쿼터(연중 일정한 기간 동안 우리나라 영화를 상영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를 축소하자 난리가 났다. 국내 대중문화업계가 외세에 밀려 다 죽게 생겼다고 했다. 스크린쿼터를 사수(死守)하겠다며 외국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 관람석에 뱀을 풀어놓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기우(杞憂)였다. ‘신바람’ 유전자(DNA)를 가진 한국인에게 위기는 더 큰 기회로 나아가는 도약대가 됐다.
한국인의 정신을 담아낸 “하면 된다”를 보여준 보다 극적인 장면이 있다. 반도체 세계 제패다. 한국이 만들어내는 반도체는 세계 경제가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필수재’가 된 지 오래다. 며칠 전 백악관에서 삼성전자 관계자를 불러 “반도체 공급 계획을 바꿔서라도 미국 기업에 우선적으로 제공해 달라”고 압박해 국제적 논란을 일으켰을 정도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사업 진출을 본격화한 1983년과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다. 그해 반도체 생산의 걸음마를 갓 뗀 삼성은 최고 엘리트들을 일본의 B급 회사였던 샤프전자에 연수생으로 보내 제조기술을 배워오게 했다. 삼성을 경계한 샤프는 연수생들에게 공장 바닥청소 같은 허드렛일만 시키고 생산라인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온갖 수모를 견뎌내며 장님 코끼리 만지듯 생산기술을 더듬어내 시작한 반도체 사업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원동력은 “해내고야 만다”는 기업가 정신이었지만, 한 가지 요인이 더 꼽힌다. 정부 간섭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즈음 정부가 ‘공업발전법’을 제정해 기업들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각 산업에 시시콜콜 간섭하고 있었지만 반도체는 예외였다. 반도체가 뭔지 잘 몰랐던 공무원들이 건드릴 생각을 못한 덕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등 바둑기사들이 세계 대회를 잇달아 제패한 것과 맞물려 기업인 사이에 자조 섞인 퀴즈가 나돌았다. “반도체와 바둑이 세계 1위에 오른 비결이 뭔지 아는가?” “정부 부처인 상공부와 문화부에 반도체과, 바둑과가 없는 덕분이다.”
이 말이 허튼 게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대표적인 게 금융산업이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2000년대 이후 역대 정부가 ‘금융의 삼성전자’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워내겠다며 온갖 육성정책을 내놨지만 구호뿐이다. ‘삼성전자’ ‘골드만삭스’는커녕 온갖 정부 규제에 이리 치이고 저리 채인 채 쪼그라들고 있다. 은행업계는 정보기술(IT) 회사의 자회사인 후발주자 카카오뱅크에 주식 시가총액 절대 1위 자리를 내준 채 살아남기에 급급한 신세가 됐다. 정부가 도와주겠다며 손을 내뻗을수록 해당 산업은 그만그만한 도토리들의 생태계가 돼 버린다. ‘보호’를 빙자한 규제 사슬에 갇혀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가는 탓이다. 정부가 그 무시무시한 ‘마이너스의 손’을 요즘 ‘빅테크’ IT업계에 뻗치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의 독점 폐해를 감시하고 바로잡는 것은 필요하지만, 기득권 사업자들을 지켜주기 위해 택시시장의 ‘메기’로 떠올랐던 타다의 날개를 꺾어버린 일을 되풀이해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