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이번엔 금융기관 손 본다…헝다 등 기업 유착 조사

입력 2021-10-12 15:07
수정 2021-10-24 02:50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금융회사와 민간 기업 간 관계를 면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하반기부나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와 부동산개발업체 등 민간 영역에 대한 규제를 전방위로 강화하고 있다.

시 주석의 지시에 따라 중국 최고 반부패 사정기관인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25개 은행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WSJ는 시 주석이 집권한 이래 가장 광범위한 조사라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는 국유 은행과 펀드, 금융감독 당국자 등이 민간 기업과 과도하게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고 있다.

조사를 통해 기율위는 대상의 대출, 투자, 규제 관련 기록을 검토하고, 민간 기업과 관련된 특정 거래나 결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부적절한 거래 혐의가 확인된 관계자들은 중국공산당의 공식적인 조사를 받아야 하며, 이후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

기율위는 특히 350조원의 부채로 부도 위기에 몰려 있는 부동산개발업체 헝다그룹과 당국의 반대에도 뉴욕 상장을 강행한 세계 최대 차량호출업체 디디추싱, 알리페이 운영사인 앤트그룹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WSJ은 이번 조사가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의 기점이 될 내년 가을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중국 경제 체제를 서구식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광범위한 시도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또 시 주석의 목표가 중국 경제를 완전히 통제함으로써 거대 민간 기업과 국가 권력을 위협하는 다른 권력자들이 금융 부문을 장악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자 권력 서열 6위인 자오러지 중앙기율위 서기는 지난달 26일 회의에서 "어떠한 정치적 일탈도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금융 기관에 대한 조사는 금융 부문의 수장으로 통하던 왕치산 부주석의 영향력 약화와도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다. 왕 부주석은 시 주석 집권 1기(2012~2017년)에 중앙기율위 서기를 맡아 반부패 사정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중국의 금융 부문은 당국의 조사를 대부분 피할 수 있었고, 국유은행들은 관계가 긴밀한 하이난항공(HNA)그룹 등 일부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대출을 받아냈다.

그러나 지난 8월 왕 부주석의 측근으로 사정기구인 중앙순시조 부조장을 지낸 둥훙이 수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며 왕 부주석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소식통들은 이번 조사에서 중국건설은행의 HNA그룹 대출과 중신그룹의 헝다 대출 등이 검토 대상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신그룹은 중국 정부의 부동산 대출에 대한 거듭된 경고에도 헝다에 수조원 이상을 이상을 지원했다. 중신그룹 외에도 중국 4대 국유은행인 중국농업은행을 포함한 국유은행,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 대형 보험사, 국영 펀드 등도 빅테크 기업 투자 과정에 대해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WSJ는 전했다.

한편 헝다그룹은 11일 지불해야 했던 달러표시채권 3건의 이자 총 1억4800만달러(약 1800억원)도 지급하지 못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헝다는 지난 23일과 29일에도 달러채권 이자를 내지 못했다. 각 채권 계약서 상 공식 디폴트(채무불이행)까지는 30일의 유예 기간이 있다. 공식 디폴트가 되면 파산 절차로 들어갈 수 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