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규제에 대한 금융당국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여러 차례 “실수요 대출도 차주의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관리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수요자 대책을 요구하는 청와대와 정치권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가계부채 관리는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전세대출 등 실수요자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정책 노력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기점으로 금융당국의 기조에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10월 중순을 목표로 추가적인 가계대출 관리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었지만, 발표 시점이 미뤄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전세자금대출이 가계부채의 ‘주범’이라고 판단하고 고강도 대책을 예고해왔다. 올 들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에서 늘어난 가계대출 32조7339억원 중 52%인 17조335억원이 전세대출이었다. 당국은 이에 주택금융공사 등 정책 보증기관의 금융사 보증비율(현행 80~100%)을 낮추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은행은 보증서를 담보로 전세대출을 실행하는데 보증 비율이 줄어들면 한도가 줄어들고 금리가 높아지는 효과가 난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실수요자 대책’을 요구하면서 금융위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수위도 한층 낮아질 전망이다. 금융권에선 △전세자금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포함하거나 △전세자금대출에도 원금상환을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도입할 수 있다고 예상해왔다. 은행권 관계자는 “두 방안 모두 전세대출 대란을 불러올 수 있어 당국도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은 “대출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총량규제를 지속하는 한 ‘연말 대출대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말부터 70~100여 개 지점이 소속된 ‘영업그룹별’로 월별 대출총량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별 지점별 총량 관리를 도입한 우리은행, 국민은행과 마찬가지로 대출총량을 엄격하게 관리하려는 것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소진 속도에 따라 한도를 재배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출 중단이 일어나는 것을 최대한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훈/박진우/빈난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