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대목 놓친다"…하루 14만달러에 화물선 빌리는 美유통사

입력 2021-10-11 16:59
수정 2021-10-25 00:31

“모든 가게에 가봤지만 핼러윈 장식품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어요.”

핼러윈데이를 비롯한 연말 최대 쇼핑 대목을 앞두고 미국 유통업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왔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병목 현상으로 재고 확보가 어려워진 것이다. 연말 대목을 놓칠 수 없는 유통업체들은 하루 대여료가 1억원을 훌쩍 넘는 전세 선박까지 물색하고 나섰다. 자구책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지만 온라인 쇼핑 증가로 물류 대란이 일상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운송비 두 배 비싸지만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월마트 코스트코 홈디포 등 미 대형 유통업체들이 적시에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거액을 들여 화물선을 대여하고 있다. 기존 물류시스템으론 빠른 상품 조달이 어려워지자 선박을 통째로 빌리는 것이다.

유통업체들의 전세 선박은 컨테이너 1000개를 실을 수 있는 소형 선박이다. 컨테이너 2만 개를 싣는 물류업체의 초대형 선박보다 규모가 작다. 병목 현상이 심각한 대규모 항만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하역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미 남부캘리포니아 해양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로스앤젤레스(LA)와 롱비치 항만 부근에서 대기 중인 선박은 60여 척으로 한 달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전세선을 이용하면 서부 포틀랜드, 오클랜드와 미국 동부 지역의 항만으로 입항할 수 있다.

높은 비용은 부담이다. WSJ에 따르면 하루 선박 대여비는 14만달러(약 1억6740만원)로 주요 화물선을 통한 운송보다 두 배나 비싸다. 그러나 유통업체들이 더욱 두려워하는 것은 연 수익의 3분의 1을 벌어다 주는 연말 대목을 놓치는 것이다. 특히 최근엔 중국의 전력난으로 항만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중국산 제품을 수입하는 유통업체들의 부담이 커졌다. 영국 컨설팅회사 캐피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선박 206척(1주일 평균치)이 중국 항구에 입항하기 위해 대기 중이다. 2년 전 82척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미 항만에선 한꺼번에 많은 화물선이 몰리면서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 결과 미 유통업체들이 아시아에서 제조된 상품을 수입하는 데 80일이나 걸리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두 배 이상 길어진 것이다. 코로나19발(發) 일손 부족으로 하역 작업도 더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조지아주 사바나 항구엔 컨테이너 700여 개가 방치됐다. 하지만 전세 선박을 활용하면 “제품 배송 과정에 대한 통제력이 높아진다”고 유통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물류대란 언제까지유통업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홈디포, TJ맥스 등 유통업체의 핼러윈 장식품 진열대는 텅 빈 상태다. 대신 크리스마스용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일찌감치 핼러윈 장식품을 구매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WSJ는 “핼러윈에 마녀, 유령 장신구 등을 찾는 소비자들은 올해 가장 무서운 것을 발견하고 있다”며 “(그것은 바로) 빈 선반”이라고 했다.

올해 핼러윈데이를 제대로 즐기려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것도 공급난을 가중시킬 전망이다. 미국소매업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핼러윈데이 지출은 사상 최대치인 101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이전 최대인 2017년의 91억달러를 웃도는 규모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소비자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도 내고 있다. 오하이오주에 사는 한 시민은 마당을 장식할 가짜 거미줄을 구매하지 못해 고기 포장용 그물로 대체했다고 WSJ는 전했다.

크리스마스 때도 물류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크리스마스용 장신구 판매업체 내셔널트리컴퍼니의 크리스 버틀러 최고경영자(CEO)는 “추수감사절 전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매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사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물류난이 장기화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을 맛본 소비자가 모든 연령층으로 확대돼서다. NYT는 “온라인 쇼핑으로 공급망에 대한 압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