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8일. 서울 성수동의 차량공유업체 쏘카 본사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인터넷 포털 다음 창업자로 유명한 이재웅 씨(당시 쏘카 대표)가 새로운 승차공유 앱 ‘타다’ 출시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타다는 스마트폰 앱으로 목적지를 입력하면 11인승 카니발이 도착해 승객을 실어나르는 서비스였다. 요금은 택시보다 10~30% 비쌌지만 ‘친절하고 편리하다’는 게 필살기였다. 타다 기사들은 배차가 이뤄지면 거부하지 않고 무조건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승객이 타면 “안녕하세요. 안전벨트를 매주세요. 차내 온도는 편안하신가요?”라며 정중하게 맞았다. 또 승객이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이상 조용히 운전만 했다. 차량 안에는 무료 와이파이와 충전기도 갖췄다.
흔히 스타트업의 본질은 ‘이용자의 사소한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타다는 그 ‘작은 혁신’에 충실했다. 친절하고 깨끗하고 무조건 온다는 믿음, 즉 이동수단의 기본에 집중한 것이다. 정보기술(IT) 기업이 밀집한 강남 일대에서 시범 운영할 때부터 입소문이 퍼지더니 삽시간에 인기가 뜨거워졌다. 9개월 만에 이용자가 100만 명을 넘었고, 재탑승률은 90%에 육박했다. 10명 중 9명은 제값을 내고 계속 이용했다는 뜻이다. 첫 등장 후 3년, 새 주인 맞은 타다잘나가던 타다가 이후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우리 모두 아는 그대로다. 택시업계가 ‘생존권’을 앞세워 결사항전에 나서자 정부와 국회는 ‘타다 금지법’이라는 희대의 규제법안을 통과시켰다. “사람들이 차를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세상이 목표”라던 이씨는 화가 많이 났는지 대표직을 던지고 나가버렸다. 1만 명 넘는 기사가 일자리를 잃었고, 타다 카니발은 그렇게 도로에서 사라졌다.
2021년 10월 8일. 핀테크업체 토스가 타다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모든 업계 관계자들이 깜짝 놀라는 걸 보면 올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뿌린 인수합병(M&A)으로 기록될 듯싶다. 양쪽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토스는 기업가치 8조원대로 성장하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연간 매출이 12조원에 달하는 택시시장에서 결제액 규모를 불리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타다의 모회사인 쏘카는 기업공개를 앞둔 상황에서 ‘적자투성이’ 타다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토스와 타다 모두 알토스벤처스라는 미국계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을 M&A 배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핀테크 얹어 '화려한 부활' 보여주길‘스타트업하기 힘든 나라’로 꼽히는 한국에서 토스와 타다는 많은 예비 창업자의 롤모델이었다. 그런 두 회사의 결합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우선 금융업에서만 확장하던 토스는 처음으로 모빌리티(이동수단)라는 신사업에 진출했다. 얼마 전 문을 연 토스증권과 토스뱅크를 챙기기도 버거울 텐데, 깜짝 M&A까지 나선 걸 보면 참 대단한 ‘확장 본능’이다. 토스는 동남아시아 그랩처럼 모빌리티와 핀테크의 결합으로 성장 동력을 찾는다는 구상이다.
실패한 스타트업으로 대중에 각인된 타다가 부활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타다는 가맹택시 사업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업계 1위 카카오모빌리티에 크게 뒤처져 있다. 이번 M&A는 투자금액만 놓고 보면 ‘스몰 딜’에 속한다. 하지만 작은 스타트업 인수가 몇 년 뒤 기업의 명운을 바꾼 사례도 많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쿠팡은 싱가포르의 망해버린 스타트업 훅을 사들여 ‘쿠팡 플레이’라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내놨고, 삼성전자는 미국 루프페이 인수로 삼성페이를 탄생시켰다. 타다는 3년 동안 모빌리티 시장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다뤄본 경험과 전문인력을 갖고 있다.
토스는 올해 말 전면 개편한 타다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창업자 이승건 대표는 “토스는 창업 후 지속적으로 사업 모델이 고착화된 시장에 진출해 혁신을 선보였고, 이번 인수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차량호출 시장의 카카오 독점 구도를 깨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때마침 카카오가 ‘골목상권 논란’에 몸을 사리는 상황이다. 토스 특유의 화려한 마케팅이 더해지면 내년 국내 모빌리티 시장에서 아주 흥미로운 경쟁이 펼쳐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