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분야에서 인공지능(AI)의 영향력은 과연 어디까지 확장되는 것일까요. 마침내 클래식 음악계 최고봉의 미완성 유작에까지 AI의 손길이 닿게 됐습니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 등 독일 언론에 따르면 지난 9일(현지시간) 독일 본에서 AI가 작곡한 베토벤 교향곡 10번이 초연됐습니다.
베토벤 사후 195년 만에 AI가 작곡한 베토벤 교향곡 10번의 풀버전이 지휘자 더크 카프탄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 본'의 연주로 선보였습니다.
애초 이 공연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19 확산으로 1년 연기돼 올해 프로젝트를 후원했던 도이체텔레콤의 '텔레콤 포럼'에서 소개됐습니다.
베토벤은 교향곡 10번에 대해 일부 스케치와 메모만 남겨놨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980년대 말 음악학자 배리 쿠퍼가 1악장을 '복원(?)'해 1988년 연주한 바 있습니다. 베토벤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재구성했다고는 하지만, '천재성'이 느껴지지 못한 탓에 음악계의 평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도 스케치가 많이 남아있는 1악장만 손을 델 수 있었을 뿐 전 4악장을 재구성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AI의 베토벤 교향곡 10번 작곡 프로젝트를 주도한 도이체텔레콤은 마티아스 뢰더 카라얀연구소 소장이 이끄는 국제 음악학자들과 인공지능 전문가들로 팀이 구성됐습니다.
하버드대 음악학자인 로버트 레빈을 비롯해 러트거스대 AI전문가 등 최고의 인력들이 합세했습니다. 기본이 된 빅데이터는 베토벤의 다른 곡들과 동시대 작곡가들의 악보였습니다.
특히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들과 피아노 소나타들, 현악 4중주 곡들이 AI를 반복해서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5번 교향곡을 통해 기본 모티브를 활용해 긴 시간 연주되는 음악을 만드는 기초도 다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짧게만 남은 메모와 스케치를 바탕으로 성격이 다른 각 악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에 베토벤 교향곡 10번을 '되살려낸(?)' 전문가들은 베토벤이라는 천재의 독창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AI 간에 창의적인 협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늠해보는 실험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AI가 만들어낸 교향곡은 베토벤이 머릿속에서 구상했던 '원작'과 과연 얼마나 유사한 것일까요. AI의 발전이 인간의 '창의성'과 '창조'란 무엇인지에 계속해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