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원어치 암호화폐를 예치받아 운용 수익을 내온 암호화폐 예치업계가 특별금융정보거래법(특금법) 시행 후 ‘불법 영업’ 딱지가 붙으면서 폐업 위기에 처했다. 암호화폐거래소와 달리 원화 환전 등 사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당초 특금법 신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나 정작 법 시행 이후 ‘미신고 영업’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한 은행들이 기본적인 법인 계좌 운영조차 막아섰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려면 추가 등록이 필요하지만 이미 특금법 유예기간이 끝난 가운데 허가권을 쥔 금융당국에서 암호화폐 예치업계가 특금법 등록 대상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인 판단을 내놓지 않아 해당 사업자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10일 금융당국과 암호화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특금법상 ‘가상자산사업자’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암호화폐 예치 및 대출 서비스 업체들의 질의에 사업자가 자체 판단해 신고해달라고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암호화폐 예치 서비스는 마치 은행이나 증권·운용사처럼 투자자로부터 암호화폐를 받아 일정한 이자 또는 투자수익과 함께 되돌려주는 사업이다. 이들 업체는 예치받은 암호화폐를 전문 투자사에 위탁하거나 직접 대출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낸다.
암호화폐 예치업이 정식 가상자산사업자인지 여부가 뚜렷하게 정리되지 않자 은행권에서는 이들 업체의 사업을 ‘불법 영업’으로 간주해 법인 계좌부터 틀어막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입출금이 잇따라 정지되면서 직원 월급조차 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는 게 이들 업체의 하소연이다.
문제는 특금법 유예기간이 이미 지난달 24일로 종료되면서 이들 업체가 뒤늦게나마 금융위 등록을 진행하려고 해도 관련 절차가 모두 막혔다는 점이다. 등록 필수 요건인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조차 금융당국의 유권해석 없이는 추가로 내줄 수 없다는 게 인증 발급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 측 입장이다.
금융당국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금융위 관계자는 “특금법은 기본적으로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만든 법인데 이들 예치업자는 이 같은 위험이 없다”며 “이들 업체까지 모두 가상자산사업자로 포섭하는 것은 특금법의 관할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대 암호화폐 예치업체인 델리오가 이미 특금법 신고절차를 밟은 데 대해선 “델리오는 특금법이 규정하는 (예치 및 투자뿐 아니라) 보관·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데다 일찌감치 등록 요건을 충족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