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을 하러 카페에 나온 두 남녀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무슨 커피를 마시겠느냐는 질문에 여성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답하자 주선자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영상 한편에는 ‘달콤함 없음’이란 자막이 뜬다. 여성은 주문하는 커피의 당도를 통해 상대방이 마음에 드는 정도를 주선자에게 알려주기로 사전에 약속했던 것.
잠시 후 여성은 생각을 바꿔 “이야기를 좀 하다가 다시 주문하겠다”고 말한다. 한참 동안 상대방과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운 대화를 나눈 뒤 여성이 주문한 음료는 달콤한 캐러멜 마키아토. 자막으로 표시된 달콤함 단계는 ‘3’이다. 그녀는 다시 주문을 ‘극한 단맛’의 흑당 크림라테로 바꾼다. 달콤함 단계 ‘10’을 확인한 주선자는 뒤돌아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건우·이미소 감독이 제6회 커피 29초영화제에 출품한 ‘사랑을 말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이 작품은 지난 9일 온라인에서 열린 영화제 시상식에서 일반부 대상을 차지했다. 사랑이라는 소재와 다종다양한 커피의 매력을 재치있게 연결해 웃음을 자아내는 영상이다. 영화제 관계자는 “뛰어난 연출과 자연스러운 연기 등이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영화제는 국내 최대 커피문화축제인 ‘2021 청춘, 커피페스티벌’과 함께 열려 열기가 더 뜨거웠다.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하고 ‘청춘, 커피페스티벌’이 후원한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쉼표) 커피’. 커피를 통해 지친 심신을 달래고 새롭게 나아갈 힘을 얻는 내용의 작품이 다수 출품됐다. 올해 출품작 수는 일반부 382편과 청소년부 50편 등 총 432편에 달했다. 재치있는 아이디어와 감각적인 연출로 커피의 매력을 보여준 수작 중 일반부 9편, 청소년부 5편 등 총 14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청소년부 대상은 박준호 감독(성남테크노과학고)의 ‘인생, 달콤함 그러나 씁쓸함’이 차지했다. 주인공인 담임선생님은 기분이 좋을 땐 씁쓸한 아메리카노를,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달콤한 카페라테를 마시는 버릇이 있다. 학생의 무례한 말실수도 웃어넘길 만큼 기분 좋은 날,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선생님은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지각생과 부딪혀 커피를 엎지른다. 영상은 ‘인생, 달콤함 그러나 씁쓸함’이라는 문구와 함께 교탁 위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를 비추며 끝난다. 학교의 풋풋한 일상을 커피라는 주제에 잘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반부 최우수상은 ‘엄마의 씁쓸한 아메리카노’를 만든 김승수 감독에게 돌아갔다. 오랜만에 자취방에서 어머니를 맞은 딸의 얼굴에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다. “커피 한 잔도 안 내오냐”는 어머니의 핀잔에 딸은 억지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타 온다. 그런데 딸은 친구의 전화를 받고 어머니를 남겨둔 채 놀러가 버린다. 혼자 남은 어머니는 커피와 함께 씁쓸한 시간을 보내고 ‘커피 잘 마시고 간다’는 쪽지를 남긴 채 늦은 밤 쓸쓸히 집으로 돌아간다.
청소년부 최우수상은 ‘매력적인 커피=사람’을 제작한 손지우·조인혁·임지승 감독(연화중)이 받았다. 커피를 내리는 영상과 함께 “커피를 기르고 로스팅해 소비자들이 마실 때까지 3000시간이 걸린다”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이어 카메라는 중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펜싱을 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는 모습을 비추고, 펜싱용 보호구를 벗고 웃는 여학생의 얼굴과 함께 “자신만의 매력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분은 커피처럼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말이 나온다. 따뜻한 내용과 유려한 영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평가다.
일반부 우수상을 받은 이동빈 감독의 ‘커피와 시네마’는 커피를 통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과정을 잔잔하게 풀어냈다. 독립영화관을 운영하는 여성은 코로나19로 텅 빈 영화관에서 커피와 함께 좋아하는 영화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그런데 영화 속 남성이 갑자기 “같이 마시지 않겠느냐”고 말을 걸어오고, 여성은 기쁜 얼굴로 승낙한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이야기를 적절한 연출로 표현해 코로나19 극복에 대한 희망을 잘 나타냈다는 평가다.
김민서 감독(운정고)은 ‘커피, 어디까지 해봤니’로 청소년부 우수상을 받았다. “커피는 어떻게 마시는 게 제일 맛있냐”는 딸의 질문에 아버지는 좋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그간 기울였던 노력을 떠올린다. 핸드드립, 모카포트, 사이펀 등을 거쳐 아버지가 최종 선택한 것은 커피머신. “편한 게 최고야”라는 말과 함께 영상은 끝난다. 연출과 연기는 소박하지만 커피와 휴식이라는 이번 영화제의 주제에 잘 접근한 내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시상식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청춘 커피페스티벌 유튜브 채널을 통해 녹화 중계됐다. 류제돈 롯데물산 대표와 박성수 서울 송파구청장, 김정호 한국경제신문 사장이 영상으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수상자들에게는 총 2000만원의 상금이 돌아갔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