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도시공사가 공공의 이익으로 환원해야 할 개발이익을 민간업자에게 귀속되도록 방치·묵인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 발표한 한 감사보고서에서 이같이 적시했다. 최근 ‘대형 게이트’로 떠오른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그대로 묘사한 듯한 내용이다. 그러나 정작 이 보고서에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내용은 빠져 있다. ‘의왕·하남도시공사 개발사업 추진 실태’라는 제목대로 의왕·하남 개발사업만 감사 대상에 넣었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감사원은 당시 경기 남부권 도시개발사업 13곳에 대해 감사를 검토했다. 대장동도 13곳에 포함됐지만 최종 감사 대상에서는 빠졌다. 대장동 개발사업은 당시 택지 조성 단계였기 때문이라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대장동 개발사업은 착수 때부터 ‘한국의 베벌리힐스’로 알려질 만큼 부동산업계의 관심이 높은 사업이었다. 그만큼 비리 발생 가능성이 클 텐데도 감사원은 굳이 사업단계를 따져 감사 대상에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국민의힘과 대장동 주민들이 6일 공익감사를 청구하면서 감사원은 뒤늦게 대장동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야권은 그러나 감사원의 감사 의지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설사 감사에 나서더라도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시간 끌기’를 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국감에서 “감사원의 신뢰가 높지 않다는 게 문제”라며 금강·영산강보 해체 관련 공익감사 청구를 사례로 들었다. 시민단체인 4대강국민연합이 지난 2월 “수천억원의 혈세를 들여 멀쩡한 보를 철거하려고 한다”며 청구한 이 사건은 8개월이 되도록 감사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충분히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감사원 해명이지만, 1개월 내에 공익감사 개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 감사원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이 6월에 청구한 ‘백신 조기 도입 실패’ 관련 감사도 감감무소식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탈원전 정책 감사로 여권의 뭇매를 맞은 감사원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몸 사리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감사원이 특정 사건이나 의혹에 대해 시행하는 ‘특정 사안 감사’는 2017년 447건에서 2020년 107건으로 급감했다.
강민아 감사원장 권한대행은 국감에서 대장동 의혹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이 이와 관련해 신속한 감사에 나서지 않는다면 권력형 비리를 방치·묵인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이제는 ‘택지 조성 단계’라는 변명도 통하기 힘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