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력소비 '100분의 1'로…차세대 전자소자 기술 개발

입력 2021-10-08 16:59
수정 2021-10-08 23:41
전자는 마치 팽이처럼 움직인다. 자기장에 반응해 소용돌이치듯 회전 운동을 하는데 이를 ‘스핀(spin)’이라고 한다. 크게 위쪽 방향(업스핀)과 아래쪽 방향(다운스핀)으로 나뉜다. 전자는 또 불확정성 원리 등 양자역학적 특성에 따라 위치를 특정하면 운동량을 알 수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스핀과 불확정성 원리 등이 뒤섞여 상태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 상태를 파악하는 게 차세대 전자공학의 과제다. 이를 스핀트로닉스(spin+electronics)라고 한다.

여러 스핀이 마치 고슴도치 가시처럼 뒤섞여 있는 ‘스커미온’이란 구조체가 있다. 스커미온은 수 나노미터(㎚·1㎚=1억분의 1m) 크기로 만들 수 있고, 작은 전력으로 움직일 수 있어 차세대 메모리 소자로 각광받고 있다. 스커미온을 이용해 만든 소자는 기존 소자에 비해 100분의 1 이하 전력을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초저전력 소자의 중요성이 특히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 등이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정도로 전력 소모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전 바둑기사와 대국 한 판을 둘 때 소모한 전력은 1메가와트(㎿)였다. 일반 가정집 100가구가 하루에 사용하는 전력 사용량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연구팀은 스커미온 전자소자를 구현할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8일 발표했다.

스커미온을 전자 소자로 개발하려면 개별 스커미온을 생성하고 검출하는 기술, 그리고 이동시키거나 삭제하는 기술이 동시에 필요하다. 연구팀에 따르면 기존 연구그룹들은 네 가지 기술의 일부 조합을 실험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한꺼번에 다루지는 못했다. 또 대부분 평면 상태(2차원)에서 빛, 자기장 등으로 외부에서 자극을 가해 스커미온을 생성 또는 삭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표준연 연구팀은 3차원 수직 전극 구조를 기반으로 한 스커미온 생성 및 삭제 기술을 새로 선보였다. 텅스텐과 코발트-철-붕소 합금, 산화 탄탈럼, 산화 마그네슘 등으로 구성된 적층 박막을 만들어 실험을 거듭하던 중 이런 기술을 개발했다. 박막의 산화층 내부에 전자의 이동 경로가 생기는 ‘필라멘트’ 현상이 발생하면서 이 필라멘트를 기준으로 스커미온이 쉽게 생성 또는 삭제된다는 설명이다. 이를 기존의 스커미온 이동 기술과 접목해 하나의 소자에서 스커미온의 자유로운 생성과 삭제가 가능함을 보였다. 연구팀 관계자는 “3차원 구조에서 스커미온 생성과 소멸에 성공한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라며 “차세대 반도체인 뉴로모픽 개발에 도움이 될 연구 성과”라고 설명했다. 사람의 뇌는 1000억 개의 뉴런(신경 다발)과 1000조 개의 시냅스로 이뤄져 있는데, 이 구조를 모방해 전기적 신호가 발생하도록 설계한 반도체를 뉴로모픽이라고 한다.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나란히 배치해 정보 처리 속도를 높이고 전력 소모량을 줄인 반도체다. 소비 전력이 20와트(W)에 불과해 AI를 구현하는 데 최적으로 통한다.

스커미온은 또 삼성전자가 차세대 메모리로 개발하고 있는 M램 기술에도 응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M램은 자기장의 밀고 당기는 현상을 이용해 데이터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반도체다. 이론상 D램보다 집적도가 1000배 이상 높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미래소재디스커버리사업 등의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즈’에 실렸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