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1996년 선보인 전기자동차 EV1은 ‘비운의 전기차’로 불린다.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였지만, 내연기관 차량이 주류인 시장에서 외면받으며 단종됐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나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다. 완성차 업체들은 앞다퉈 전기차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누가 먼저 친환경차로 빠르게 전환하느냐가 생존의 관건이 됐다.
몰락했던 GM도 새 시대를 맞아 부활하고 있다. 시장에선 미국 자동차 업체 가운데 가장 빠르게 미래차 시대에 적응하고 있는 회사로 꼽힌다. 국내 증권사들이 다시 주목해야 할 전통주로 GM을 꼽은 이유다. GM 화려한 부활
GM의 과거는 화려했다. 뷰익 캐딜락 폰티악 등을 포함해 1920년까지 약 39개의 회사를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다. 1930년대에는 포드를 누르고 글로벌 최대 자동차 업체로 올라섰다. 1960년대에는 미국 자동차 시장점유율이 50%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든 GM은 지난 10년간 투자자들의 관심 밖에 머물렀다. ‘파산 쇼크’에 대한 기억 탓이다. GM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결국 파산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9년 6월 파산보호 신청 후 상장 폐지됐던 GM은 이듬해인 2010년 11월 재상장했지만 주가가 30달러 선에서 갇혀 있었다. 재상장 당시 주가는 31달러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기 이전인 작년 초 주가는 34달러에 불과했다.
10년간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GM은 개선된 실적으로 부활을 알렸다. 2017년부터 유럽,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모두 철수한 뒤 미국 시장에 집중했다. 구조조정이 끝나갈 무렵 코로나19 사태로 대중교통 이용을 꺼리는 이들이 늘면서 차량 판매가 증가한 것은 호재였다. 2020년 3분기 GM의 영업이익률은 12.5%에 달했다. 재상장 이후 분기 사상 최대 수익성을 확보한 셈이다.
시장에선 GM을 ‘디트로이트의 선두주자’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분야에서 모두 대비가 잘된 업체란 평가가 이어졌다. 2021년 6월 주가는 63.92달러까지 치솟았다. 2010년 재상장 이후 최고치였다. 美 대표 모빌리티 기업으로 거듭나올해 실적 전망도 밝다. 업계에선 GM이 113억42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작년 대비 70% 넘게 증가한 수치다. 한국투자증권은 “전기차 정책 강화에 따른 성장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내연기관차로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으로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차 제품군도 탄탄하다. ‘기름 먹는 하마’로 불렸던 허머가 전기차로 탈바꿈해 출시를 앞두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공동으로 개발한 배터리 시스템을 장착한 캐딜락의 첫 전기차 리릭은 10분 만에 사전계약 물량이 완판되며 흥행을 예고했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자율주행차 기업 모멘타에 3억달러(약 3552억원)를 투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류회사를 공략한 B2B(기업 간 거래) 비즈니스인 ‘브라이트 드롭’ 사업부도 신설해 미래 먹거리 확보에도 나섰다. 전기 상용 밴 EV600과 전동식 운반대 EP1 등을 개발했다. 첫 번째 고객사 페덱스와 계약을 체결해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최근 볼트 차량 화재 관련 충당금(8억달러)과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인한 실적 부진 등의 영향으로 주가가 조정을 받았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 성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GM은 내연기관 자동차 회사에서 전기차·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을 계획 중”이라며 “전기차 라인업이 확대되고 배터리 기술과 자율주행 역량이 부각된 상황에서 현 주가는 내연기관 시대에 머물러 있는 밸류에이션”이라고 평가했다.
박재원/맹진규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