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암호화폐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뚜렷하다. 코스피지수가 이달 들어 3.1% 떨어지면서 부진을 면치 못하는 사이 비트코인은 20% 넘게 뛰어오르며 6600만원을 돌파했다. 지난 5월 초 이후 최고 수준이다. “중국처럼 규제하지 않을 것”(미국 중앙은행 의장), “암호화폐 거래 금지할 생각 없어”(미 증권거래위원장) 등 미 금융당국에서 나온 우호적 발언이 상승장의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힌다. “사실상 주류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미국 기관투자가의 시각이 바뀌면서 상승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트코인 23.1% vs 코스피 -3.1%
7일 업비트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오후 3시 기준 6632만원으로 이달 초(5385만원)보다 23.1% 상승했다. 지난 5월 11일 이후 최고치다. 거래량도 급증했다. 업비트의 24시간 거래대금은 16조5281억원으로 전날보다 8.7% 늘었다. 미국 기관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인베이스의 거래대금은 40.1% 폭증하기도 했다. 암호화폐 대장주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1조293억달러로 페이스북(9216억달러)을 제치고 아마존에 이어 세계 6위로 올라섰다.
주식시장이 부진한 사이 암호화폐가 급등하는 것은 제도권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청신호’가 잇달아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를 심사 중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게리 겐슬러 위원장이 “비트코인 선물 ETF에 대한 SEC 직원의 검토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투자심리에 불을 지폈다.
다음 날인 지난 2일에는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암호화폐를 중국과 같은 방식으로 금지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암호화폐에 보수적인 방침을 유지해온 Fed도 당초보다 완화된 입장을 나타내면서 제도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브라질에서도 암호화폐를 합법적인 투자자산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앙은행 총재가 직접 밝히기도 했다. 기관투자가들이 주도한 장이번 상승세는 미국 기관투자가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암호화폐는 가치가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던 조지 소로스의 소로스펀드가 비트코인에 투자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 대표적이다. 돈 피츠패트릭 소로스펀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비트코인은 사실상 주류 자산으로 진입했다”며 “우리는 소량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로스펀드처럼 기관투자가 사이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펀드시장 조사업체인 인터트러스트에 따르면 전 세계 헤지펀드 최고재무책임자(CFO)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앞으로 5년 안에 전체 자산의 7.2%를 암호화폐로 보유할 예정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암호화폐시장 조사업체인 코인셰어스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일까지 암호화폐 투자상품 총 유입액은 9000만달러(약 1069억원)로 7주 연속 유입세다. 코인셰어스는 “기관투자가는 비트코인 외에도 이더리움, 솔라나 등 알트코인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트코인 ETF 출시에 대한 기대도 기관투자가 유입에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SEC는 비트코인 ETF 상품 네 건에 대한 심사 결과를 11~12월 발표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는 가운데 기관투자가들이 이를 헤지하기 위한 ‘디지털 금’으로 불리는 비트코인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8월 미국 근원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PCE)는 전년 동월 대비 3.6% 올라 1991년 5월 이후 3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Fed의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