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는 무엇이든 손에 닿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능력을 신에게서 부여받고 무척 행복했다. 그러나 음식이나 술잔, 꽃 심지어 사랑스러운 딸 오렐리아 공주까지 금으로 변해버리자 왕은 큰 슬픔에 빠졌다. 왕은 신성한 팍톨로스 강물에 몸을 씻고서야 비로소 황금을 만드는 손의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황금의 손을 가진 미다스 왕 이야기는 금을 향한 인간의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금을 숭배하고 소유하기를 갈망하는 인간의 심리를 작품에 반영해 거장이 된 예술가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국민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다. 그의 대표작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황금이 사용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 작품을 감상하면서 황금으로 그려진 그림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자.
이 그림은 ‘레이디 인 골드(황금의 여인)’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그만큼 황금이 풍부하게 재료로 사용됐다. 클림트의 초상화 중 가장 많은 금이 사용된 작품이기도 하다. 초상화 속 모델은 오스트리아의 부유한 사업가 페르디난트 블로흐의 아내 아델레다. 블로흐는 자신의 부와 사회적 지위, 예술적 취향을 아내의 초상화를 통해 과시하기를 원했다. 블로흐의 마음을 꿰뚫어 본 클림트는 자신이 창안한 황금장식기법으로 아델레를 화려하게 장식해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켜줬다. 황금장식기법은 금과 다양한 문양을 결합해 호화롭게 장식한 표현기법을 말한다.
황금장식기법의 효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먼저 황금은 부와 권력, 아름다움, 불멸의 상징으로 인간이 숭배와 경의를 바치는 대상이다. 중세시대 화가들은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그릴 때 외경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물감 대신 순금가루를 사용해 화려하게 치장했다. 클림트는 귀하고 사치스러운 황금을 풍부하게 사용해 현실의 여성인 아델레를 비현실적 세계에 존재하는 숭배의 대상으로 격상시켰다.
또한 화려한 문양은 여성의 관능미를 강조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 아델레의 얼굴과 목, 손, 발을 제외한 몸은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됐다. 드레스를 장식한 독특한 문양들은 고대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 디자인에서 가져왔다. 배경에는 직사각형 문양과 기하학적 도형, 동심원 문양, 꽃과 식물 문양이 사용됐다. 클림트가 황금장식기법을 창안한 계기는 무엇일까.
클림트는 금 세공사였던 아버지가 금의 무게를 재고 금 세공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금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느꼈다. 또 1903년 이탈리아의 도시 라벤나를 두 차례 방문한 여행 경험을 통해 영감을 받았다. 클림트는 산 비탈레 성당의 제단 벽면을 장식한 비잔틴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와 황녀 테오도라의 모습을 담은 황금빛 모자이크를 보고 황금이 신성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미술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클림트는 많은 연구와 실험 끝에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된 혁신적 화풍을 창조했다.
하지만 장식성이 강한 클림트 화풍은 처음에는 오스트리아 예술계의 비웃음을 받았다. 보수적이며 권위적인 미술계는 과도하게 장식된 그림에 대해 예술성과는 무관한, 단지 예쁜 그림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장식미술을 범죄 행위로 보는 비평가도 있었다. 클림트는 순수미술과 장식미술의 융합으로 새로운 미술의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황금장식기법은 인간의 본능인 관능적 욕구를 아름답게 승화시킨다는 자신의 예술관을 구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었다.
독창적인 황금장식기법으로 에로티시즘 미학을 구현한 클림트의 작품들은 뒤늦게 미술계의 인정을 받았고 대중적 인기도 누렸다. 고품격 에로티시즘을 보여준 클림트의 초상화에 빈 상류층 여성들이 열광했다. 사교계 여성들이 경쟁적으로 클림트에게 초상화를 주문한 덕분에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유명화가가 됐다.
황금장식기법의 최고 걸작인 이 그림은 세계적인 화장품회사 에스티 로더의 로널드 로더 회장이 200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 세계 최고가인 1억3500만달러(약 1500억원)에 구입해 더욱 유명해졌다. 또한 이 그림의 상속녀인 아델레의 조카 마리아 알트만이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8년의 법정 투쟁 끝에 유산을 되찾았던 실화를 바탕으로 사이먼 커티스 감독의 영화 ‘우먼 인 골드’가 2015년 개봉돼 화제를 낳았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