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예상 자금 조달비용도 차츰 오르고 있다. 1년 넘게 회사채 시장에서 여느 때보다 싸게 자금을 빌려왔던 기업들은 다시 조달전략을 두고 고민에 빠진 분위기다. 연말 결산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기관투자가들은 투자에 더욱 신중해졌다. 비용 관리에 민감한 기업 재무담당자라면 불확실성이 큰 11~12월에 채권을 발행하기 쉽지 않아졌다. 올해 회사채 발행시장이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1.719%로 장을 마치며 약 2년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한 달 동안에만 0.26% 포인트 뛰며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5년물(연 2.082%)과 10년물(연 2.399%)도 이 기간 각각 0.363%포인트, 0.429%포인트 오르는 등 모든 만기 구간에서 금리가 높게 뛰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발생 후 기준금리 인하,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유동성 공급을 늘려온 주요 국가 중앙은행들이 통화 완화정책을 종료할 가능성이 높아진 데 따른 변화다. 채권시장에선 한국은행이 다음달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한은은 지난 8월 기준금리를 연 0.50%에서 연 0.75%로 올렸다.
회사채 금리 역시 같은 흐름을 타고 있다. 주요 우량등급 회사채 금리(시가평가 기준)가 줄줄이 연 2%대로 오르는 추세다. 이달 들어선 투자적격등급 중 두 번째로 높은 AA+등급 회사채(3년물) 금리까지 연 2%대에 진입했다. 지난 상반기만 해도 한화(A+), LS(A+), 롯데글로벌로지스(A) 등 A급 기업도 어렵지 않게 연 1%대 금리로 채권을 발행했다.
가파른 금리 상승세에 투자심리도 식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디티알오토모티브(1500억원)과 풀무원식품(500억원) 등 수요예측(기관 대상 사전청약)에서 회사채 ‘완판’에 실패하는 기업이 최근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평가손실 가능성을 우려한 기관들이 투자를 주저한 영향이 컸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떨어지기 때문에 기관들은 금리가 크게 상승하는 시기에는 회사채 투자를 꺼리는 편이다.
이 같은 상황 변화에 회사채 시장을 찾는 기업들의 발길이 평소보다 일찍 끊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리 상승 폭이 크다보니 언제 최적의 금리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을 지 예상하기 쉽지 않은 데다, 기관들도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수익률 관리를 위해 더 깐깐하게 투자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서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둔 2017년 4분기 분위기가 지금과 비슷했다. 기준금리가 연 1.25%에서 연 1.50%로 오른 것은 그 해 11월30일이지만, 일찍부터 인상 가능성에 힘이 실리면서 9월부터 주요 채권금리가 눈에 띄게 오르기 시작했다. 금리 변화에 시장 분위기가 가라앉은 여파로 11월10일 SK텔레콤을 마지막으로 그 해 공모 회사채(금융사 제외) 발행이 끝났다. 국내에선 11월 말에서 12월 초까지 회사채가 발행되는 게 일반적이다.
대형 증권사 기업금융 담당임원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또 한번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채권 금리 상승추세가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차라리 기관들이 새로 들어온 운용자금으로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내년 초에 채권을 발행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기업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