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헝다 사태'가 드러낸 中 부채 뇌관

입력 2021-10-05 17:31
수정 2021-10-06 00:46
헝다그룹의 위기가 국제금융시장 뉴스로 등장한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혹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투자은행의 파산에 비교하기도 한다. 부동산 문제에 기인했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두 사건은 다른 점이 많다.

첫째, 리먼브러더스는 금융회사지만 헝다그룹은 모기업인 헝다부동산을 주축으로 하는 기업집단이다. 자회사에 헝다생명 등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금융회사로 보긴 어렵다. 중국 정부의 부동산 기업에 대한 대출규제 강화로 은행들이 헝다그룹에 대출 연장을 해주지 않자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면서 위기에 처한 것이다.

둘째,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미국 금융시장의 시스템 위기를 촉발했지만 헝다그룹 파산이 중국 금융시장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부동산 가격 하락에서 시작됐지만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은 부동산 관련 대출이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파생상품으로 팔려나가면서 손실이 몇 배로 커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파생상품이 워낙 복잡해 각 금융회사가 입은 손실을 시장 전문가들도 파악하기 어려운 지경이었고, 금융회사들도 각자도생하기 위해 다른 금융회사에 빌려줬던 자금을 회수하면서 멀쩡한 금융회사도 파산 지경에 몰리게 됐다.

반면 중국은 다행히도(?) 금융시장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아 금융회사 간 연계성이 높지 않은 편이며 부동산 관련 파생상품도 복잡하게 발달하지 않아 헝다그룹의 손실을 파악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따라서 헝다그룹을 파산시키면 대출해준 은행과 채권자들에 타격이 있겠지만 정부의 조정을 통해 시스템 위기로 발전하는 건 막을 가능성이 높다.

헝다그룹의 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이 겪은 국내 상황과 닮았다. 당시 위기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는 기업집단인 재벌들의 무분별한 차입이었다. 당시 은행들은 대마불사라는 신화를 믿고, 또 한편으론 정부에 등 떠밀려서 재벌들의 상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금을 쏟아부었다. 재벌이 무너질 경우 경제에 미칠 파장이 너무나 막대하므로 그 누구도 재벌기업이 부도 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재벌들도 이를 잘 알고 덩치를 키워나갔다. 덩치가 크면 클수록 더 안전하다고 믿어주니 차입을 계속 늘려 부실한 투자라도 하는 게 오히려 생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2020년 중국 정부는 부동산 기업들의 무분별한 투자를 부동산 가격 급등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대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이것이 헝다그룹 위기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헝다그룹은 오히려 현금성 자산을 이용해 부동산을 더 사들이는 모험을 감행했다. 덩치를 더 키우는 것이 대마불사로 보호받을 방안이라고 믿었던 듯하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칼을 뽑아 들었고 헝다그룹은 어려움에 처했다.

사실 부채 문제는 중국 경제가 지닌 가장 큰 약점이다. 최근 5년 동안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45%포인트 증가해 270%에 이르고 있으며 그중 164%가 기업 몫이다. 우리도 1997년 위기 이전에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눈덩이처럼 커진 기업들의 부채를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부채 규모는 과거 그 어떤 신흥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만약 이런 부채로 인한 문제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중국 경제는 진정한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이를 잘 아는 중국 정부가 헝다그룹을 구제해준다면 이는 다른 기업집단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게 돼 궁극적인 위기의 강도는 더 커질 것이다. 헝다처럼 덩치가 큰 기업은 정부가 파산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해 구제해준다고 믿고 그들도 부채 규모를 더 키우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헝다그룹을 파산시키는 것이 중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 과정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험한 길이지만 다행히 중국 정부의 막강한 힘은 파산 과정에서도 이해 당사자 간 조정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중국 경제의 금융 및 실물 충격은 상당할 것이며,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