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계열사들의 올해 최대 과제는 '파이낸셜 스토리'의 구현같다. 비전과 성장성이 뚜렷한 신사업 기회가 감지되면, 본업에서 언제든 탈피해 자원을 투입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파생할 거래에 참여할 기회를 찾기 위해 투자은행(IB)과 사모펀드(PEF) 운용사 관계자들은 SK그룹 서린동 본사를 수시로 찾고 있다. 이미 SK그룹 관계자들은 재계에서 손꼽히는 인수·합병(M&A) '고수'답게 우선주 등 금융기법을 총동원해 전례없는 거래 구조를 먼저 투자자들에 제안하고 있다. 이는 재계 뿐 아니라 자본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사안이다.
◆"상장까지 잠시만 '남남?'" SK에코플랜트의 경우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은 플랜트(에코엔지니어링) 사업부의 분할 및 경영권 매각을 진행 중이다. 국내 PEF 운용사인 이음프라이빗에쿼티(이음PE)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후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사업플랜트나 화공플랜트, 발전플랜트 등의 건설을 담당하는 에코엔지니어링 사업을 분할한 후 자회사의 경영권(지분 50%+1주)을 이음PE에 넘긴다. 이 때 보통주 대신 의결권 있는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해 수년 뒤 지분을 되사올 수 있는 방식으로 거래 구조를 짰다.
그동안 SK그룹 내 계열사들이 PEF에 일정정도 지분 매각한 후 다시 사주는 사례는 빈번했다. 하지만 경영권을 매각한 후 다시 사오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박경일 SK에코플랜트 신임 사장이 거래 구조를 직접 짠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SK에코플랜트의 모회사인 SK㈜에서 SK에코플랜트의 1조원 규모 폐기물사 EMC홀딩스 인수를 지휘한 M&A 전문가다.
IB 업계에선 복잡한 거래 구조의 목적이 추후 진행될 SK에코플랜트의 '상장(IPO)'에 있다고 보고 있다. 상장시 기업가치(밸류에이션)을 높게 받을 수 있는 폐기물·친환경부문을 강조하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플랜트 건설 부문을 의도적으로 제외시키려는 목적이 강하다는 해석이다.
현재 SK에코플랜트 내 플랜트 건설을 담당하는 에코엔지니어링 사업부의 지난해 매출은 1조7552억원이다. 여전히 회사 전체 매출의 23%를 차지한다. 영업이익의 대부분도 플랜트 부문에서 창출된다.
문제는 플랜트 사업을 비롯한 기존 전통 사업군들이 IPO 과정에서 부각될 경우 SK에코플랜트의 정체성이 '건설업'에 묶일 수 있다는 점이다. 상장 절차에서 연관(피어) 그룹으로 국내외 친환경·폐기물사들이 아닌 기존 건설사들과 엮이면 높은 수준의 기업가치를 얻어내기 어려워진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는 해외 기관투자가 유치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친환경'을 새 기조로 내건 회사 방침과 탄소 배출을 피할 수 없는 플랜트건설 사업간 괴리도 경영진의 고민거리다.
이 때문에 사업부의 경영권을 외부 PEF에 매각해 '지분법'으로만 반영하면서 회사 본업과 무관한 듯한 모습을 보일 '묘수'를 구현했다는 평가다. 동시에 유입될 매각 대금을 활용해 추가적으로 힘을 싣는 환경부문 폐기물업체 등의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런 SK에코플랜트의 의도를 간파하고 KG ETS, EMK 등 국내 폐기물 잠재 매물들도 적정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
◆"5년 뒤 일을 어찌아나요"…SK E&S
SK E&S의 지분 매각 딜은 2조원에 달하는 '빅딜'이다. 인수 후보들에 돈을 대려는 여의도 금융권들도 분주한 상황이다. SK E&S도 이번 매각에서 자사의 보통주를 넘기는 게 아니라 RCPS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짰다.
IB업계에선 지난해 무렵부터 수차례 SK E&S가 물밑에서 도시가스 사업 매각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엄밀히 말해 SK E&S보단 모회사인 SK㈜의 의사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SK E&S의 사업구조 재편을 위해 자회사의 전체 지분(100%)을 들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각 결정을 두고 경영진들의 고민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매각해서 들어올 돈으로 어떤 신사업을 꾸릴지 확정이 안 된 점, 다른 하나는 매각 과정에서 '구성원의 동요'였다. 도시가스 경영권 매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노조는 서울시 서린동 SK건물로 상경해 투쟁을 벌일 태세였다.
이번 우선주 발행에서 SK E&S는 투자자들에게 세 가지 옵션을 열어뒀다. 우선주 전환 시기인 5년 뒤에 해당 지분의 대가를 △현금으로 상환하거나 △SK E&S의 보통주로 바꿔주거나 △상환 시점의 가치에 맞춰 자회사인 도시가스 지분으로 상환해주는 것이다. 이 결정은 SK E&S가 내린다. 모든 후보들의 관심은 마지막 도시가스 지분에 쏠려있다. 인프라펀드 뿐 아니라 주로 기업의 경영권을 사고파는 바이아웃 PEF들도 이번 거래에 뛰어든 배경이다.
물론 SK E&S는 도시가스 매각안은 상환 옵션 중 하나일 뿐 5년 뒤 자사가 선택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회사 입장에선 우선 유입될 대금으로 만기가 돌아올 5년간 사업 전환을 꾀해보고, 사업이 정착하면 아예 도시가스 자회사를 매각해 신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정반대로 도시가스 사업만한 신사업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현금으로 갚아 본업을 충실히 할 수 있는 대안도 마련한 셈이다. 시장에서 SK E&S의 딜이 영리하다고 보는 이유다.
4대그룹 재무담당 관계자는 "매각 결정은 현 경영진들이 내리지만 5년 뒤에 누가 CEO 혹은 임원으로 올지 아무도 모르는 문제"라며 "지금 경영진 입장에선 부담은 차기 경영진에게 넘기고 자기 사업을 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