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지금 당장 전방위적인 강제수사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29일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 의혹과 관련한 성명서에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망국적인 권력형 토건부패를 낱낱이 밝히고 비리를 근절하라는 국민적 요구를 적극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이라는 전제를 단 요구사항이었습니다. 경실련은 "정치인·법조인·언론인·재벌·지자체와 토건족이 결탁한 토건부패사업"이라며 "정치권 눈치보는 소극적 검경 수사로는 국민의혹을 해소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수사로는 비리 의혹 관련자들의 해외 출국이나 증거인멸 등으로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될 수 없음을 국민들은 체감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친여 성향의 시민단체가 대통령을 향해 전방위적인 강제수사를 촉구할 정도로 현행 대장동 의혹과 관련한 검·경수사는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대장동 의혹이 언론에 불거진지 16일이 지나서야 압수수색에 나섰습니다. 결과적으로 사건 관련자들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입을 맞추도록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됐습니다. 30일에는 대장동 의혹 수사를 맡은 검찰 고위 관계자가 친정부 성향이라는 문제제기를 담은 찌라시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퍼져나가기도 했습니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이날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여야를 막론하고 신속하고 철저히 수사해 엄정히 처리하라"고 지시했지만 김 총장 역시 친정부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은 화천대유 계좌에서 수상한 자금 흐름이 포착됐다는 금융정보분석원(FIU) 통보를 받고도 5개월간 사건을 묵혔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런 와중에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정치적 중립에 의혹이 제기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청와대는 지난 16일 대장동 의혹과 관련된 대장동 입주민의 '엄정 수사' 청원글을 비공개 처리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14일 청원인이 "판교대장지구 수익금이 어떻게 쓰였길래 대장지구 주민들의 험난한 교통상황, 과밀 학급 문제 등은 해결하지 못하고 막대한 개발이익이 민간기업으로 흘러갔나"라며 문제제기한 이 글은 15일까지 1만50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부겸 국무총리에게 이 청원글을 보여주며 "국무총리 직속 부패예방추진단에서 이 사건을 조사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거기간 국민청원 운영정책'을 적용하고 있다"며 일방적으로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김현종 전 대통령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지난 20일 대장동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해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인 위기를 직관하고 결단하고 출구를 열어가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난데없이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국민청원글 비공개 처리 사례 등을 볼 때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엄정 수사를 촉구하거나 이렇다할 입장을 내비칠 일은 없을 듯 싶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주요 사건마다 엄정 수사를 촉구할 필요도 없고, 어떤 사건은 자칫 엄정 수사를 촉구했다가 그 자체로 정치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렇게 대장동 의혹 수사가 국민적 불신을 받고 있는 데에 청와대도 일말의 책임이 있지 않는지는 돌이켜 볼 일입니다. 경실련이 입장문에 담은 다음 내용을 문재인 정부는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권 중 최고로 부동산가격 폭등을 초래하여 온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드러난 대장동 토건부패 의혹에 대한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