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주도 인공지능(AI) 진흥 정책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선점하는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AI 기술이 이미 예고했던 시나리오입니다. 각국이 막대한 예산을 일사불란하게 투입하는 밑바탕에는 한 순간에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습니다.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의 모국 영국도 AI 생태계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미국 중국이 주도하는 AI 패권 다툼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모양새입니다. 영국이 그리는 ‘AI 초강대국’ 청사진을 들여다봤습니다. ◆“AI 인재 끌어가겠다”…직접 나선 영국 정부최근 영국 정부는 35페이지 분량 ‘국가 AI 전략’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다가오는 10년, AI 분야 글로벌 초강대국인 영국의 선도적 위치를 공고히 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3개월·6개월·1년 이후 등 3가지로 시기를 나눠, 인력 확보와 연구개발(R&D) 투자 및 대중 신뢰 향상 등 포괄적인 육성책을 제시했습니다.
AI 인재 확보는 주요 키워드입니다. 영국은 해당 보고서에서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해 비자 발급 자격 확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연간 실적 또는 고용 성장률이 20% 이상인 기업이 해외 인력을 유치한다면 편의를 봐주고, ‘글로벌 기업가 프로그램(GEP)’을 통해 우수한 기술 창업가를 영국으로 유치한다는 방침입니다. 영국에서 AI 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이는 별다른 인허가 절차 없이 취업할 수 있도록 제도도 손보기로 했습니다.
영국연구혁신기구(UKRI)에서 운영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 투자를 증액하고, AI 개발 핵심 인프라인 컴퓨팅 능력 평가 체계를 마련하는 등 R&D 관련 정책도 내놨습니다. ‘국가 AI R&I’ 프로그램을 통해선 잠재력이 높은 AI 기술을 선별해 초기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했습니다. 주기적으로 경제 전반에 걸쳐 AI 확산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도 발표할 예정입니다. 데이터 거래 촉진을 위한 무역 장벽 완화, 신뢰도를 얹어줄 기술 적합성 평가 시행안도 마련합니다. ◆미·중 ‘정책 경쟁’…기술 표준화·AI 교육 확대영국이 다각도 정책을 발표한 배경 한켠엔 위기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현대 컴퓨터의 모태인 ‘튜링 머신’이 개발된 컴퓨터 과학 분야 종주국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중국에서 AI를 마치 ‘전략자산’처럼 취급하기 시작하며 기술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KAIST 혁신전략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국가별 AI 특허는 중국이 9만 1236건, 미국이 2만 4708건을 차지했습니다. 영국은 971건에 불과했습니다.
미국은 2019년 ‘아메리칸 AI 이니셔티브’ 정책을 발표하며 국가 AI 역량 제고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연구개발 투자, 인프라 개방, 거버넌스 표준화, 전문인력 확충, 국제 협력 5개 분야에서 신규 전략을 내걸었습니다. 연방기관들이 AI R&D 투자를 최우선으로 추진하는 방안과, 데이터 리소스를 AI 연구자들에게 개방하는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AI 시스템 개발 지침을 수립하고 연수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전국민을 대상으로 과학(S)·기술(T)·공학(E)·수학(M) 교육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중국은 지난 2015년부터 정부 주도 정책이 시작됐습니다. ‘중국제조 2025’ 정책은 오는 2025년까지 제조업에 AI를 전면 도입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연장 선상에서 올해 발표된 ‘14.5 규획’은 제조업 강화 범위를 구체화해 항공 엔진, 전기자동차, 신소재 개발, 신약 등 8대 분야에 AI를 도입하는 방안을 정부가 직접 이끌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전국 230여개 대학에 AI 관련 전공을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2019년 ‘AI 국가전략’을 발표했습니다. 글로벌 흐름을 감안하면 선언 자체는 늦지 않았습니다. 다만 각론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는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니다. 당시 발표에 포함된 ‘과감한 규제혁신’ ‘AI 스타트업 지원’ ‘AI 인재양성’이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AI패권을 잡기 위한 국가간 경쟁이 거세지는 만큼, 우리 정부의 분투를 기대해야 겠습니다.
이시은 IT과학부 기자